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책이다. 책의 핵심은 생물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가 진화의 단위라는 주장이다. 즉, 생물은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고 생존시키기 위한 ‘생존 기계’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처음엔 제목부터가 다소 자극적이라 이기심을 미화하거나 인간 본성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책일까 우려했지만, 곧 그런 오해는 사라졌다.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생존과 복제의 관점에서 유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생물학적 은유였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행동들도 유전자의 이기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동물들이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을 내거나,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행동, 심지어 무리 전체를 위한 희생조차도, 결국에는 유전자를 공유한 개체들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의 도덕, 이타성, 협력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인간의 이타적인 본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면서, 단순한 감정이나 윤리를 넘어선 생물학적 기반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도킨스는 ‘밈(meme)’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의 전파를 유전자에 비유했다. 밈은 아이디어, 행동, 스타일 등 문화적 정보 단위로,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고 전파되며 경쟁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언어, 종교, 예술 등 인류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밈 개념은 이후 수많은 학문과 인터넷 문화 분석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인의 사고방식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서이면서도 철학적인 사유를 동반하게 하는 책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우리의 존재조차 유전자의 생존 전략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소 냉철하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각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인간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감정과 관계, 사회 제도까지도 유전자의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고의 지평이 넓어졌다.
책은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많지만, 도킨스의 설명은 비교적 친절하고 예시가 풍부해서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중간중간 유머와 재치 있는 문장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단순히 유전자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진화적 전략, 인간 행동의 기원, 문화의 발달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는 그저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선택되고 살아남은 유전자의 결과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동시에, 그런 유전자의 틀을 인식하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 역시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성과 과학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