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있겠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
백성들이 스스로 제 나라를 지키겠다고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 조선 청년 안중근은 상해에서 돌아왔다.
그곳에서 뜻있고 힘있는 이들과 국권회복을 도모하려 하였으나 하나같이 소극적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 안태훈은 이미 사망했고 그 사이 아들이 태어났다. 이후, 안중근은 진남포로 이사해 작은 학교를 열고 학생들에게 영어와 국사를 가르치며 거기에 마음을 붙이려했다.
총쏘는 솜씨가 좋아 노루를 잘 잡았지만 아까운 재능이었다.
조국의 젊은이들이 맴몸으로 싸워서 일본의 총칼에 한없이 쓰러지고 시체로 쌓여갔다.
말한마디로 대신들을 겁박하고 황제를 무력화시키고 스스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멈춰세우고 싶었다.
일본의 침탈로 인한 학살과 만행이 극에달았을때 안중근은 이토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한것같다.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도착한 안중근은 오십여명의 의병대를 이끌게 된다. 그리고 우덕순을 만나게된다.
안중근의 부대는 기획된 작전도 펼치지 못한채 흩어졌다. 열혈과 충정으로 자원입대한 의병대원들은 계통도 없고 대열도 없는 복받침이었다. 한없는 죽음이었고, 한이 없을 죽음이었지만 국권회복은 이런 죽음으로 이룰수 없다는걸 그는 깨닭게된다,
이토가 만주횡단철도 관리권에 대한 협상으로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이토 히로부미는 대련에서 하얼빈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에 도착했다. 그의 손엔 권총 한자루와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는 암살이후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것도 충분하였다. 26일 오전 9시 이토는 하얼빈에 도착한다.
25일밤 안중근은 권총을 점검하고 흐트러짐없는 조준선을 확인하고 깊이 잠들었다.
이토가 탄 열차가 하얼빈으로 들어올때 내 심장도 두근거렸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저 오종종한 것이......'탕! 탕! 탕!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순종은 조선의 살길과 황실의 살길과 백성의 살길을 먼저 찾았다. 외교적인 문제로 어쩔수없이 일본의 분노를 피하기위해 조선의 슬픔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역시 발빠르게 사건에서 손을 떼고 안중근을 일본에 넘겼다.
우덕순과 정대호(김아려와 아이들을 데려온 인물)와 함께 백옥산 아래 여순감옥에 갇혔다.
3월 15일 여순감옥에서 대한민국 안중근은 쓰기를 마친다.
그로부터 열흘 뒤 안중근은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흰색 명주 두루마리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사형장에 들어선다.
한국 황제의 생일을 피해서 하루 연기된 3월 26일 안중근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신념을 지키는 일의 어려움과 희망을 잃지않고 부딪혔던 그의 패기와 젊음은 그렇게 하나의 주춧돌이 되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렇게 건재하게 받치고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죽어서도 유언대로 하얼빈에 가지 못하고 여순감옥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