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그리스어 강사의 이야기다. 그녀는 상실과 트라우마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고, 그는 시야가 점점 좁아져 오는 병을 앓는다. 서로 다른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어 수업에서 만나, 단어의 형태와 발음을 더듬으며 서서히 가까워진다, 죽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감각을 되살리고, 그녀에게는 다시 단어를 고르는 시간을,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손끝과 귀로 그리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 소설은 언어와 신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침묵은 결핍이자 스스로 지킨 방어였고, 그는 빛 대신 촉각과 청취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말이 아닌 것으로 말하고, 보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는 방식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실을 인정하고 감응한다. 한강은 이를 과도한 감정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담아 독자로 하여금 사건보다 호흡과 감각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관계가 구원 서사가 아니라 '동행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구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지만, 곁에서 머무르며 사라져 가는 것을 함께 세어본다, 이는 인생에서 상실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다는 위로를 전한다.
작품을 덮으면 "배운다"는 행위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상실을 다른 감각으로 변역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희랍어시간은 말과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것은 결국 서로의 기척이며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조용한 동행임을 잔잔하게 설득한다.
읽는 동안 나는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단어와 목소리를 뺴앗긴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이지만, 그 침묵조차도 또 다른 언어가 될 수 있다,
한강은 이를 통해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며, 그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더듬고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희랍어 시간"은 상실 속에서도 이어지는 삶과 관계의 기능성을 깊이있게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