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자아와 기억, 상실과 구원의 주제를 탐구하는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젊은 시절 썼던(1980) 동명의 단편을 확장·재해석한 형태로, 오랜 시간 동안 작가 안에서 숙성된 정서와 철학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나’라는 서술자가 17세 시절 사랑했던 소녀와의 이별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도시’라는 이름의 세계로 들어가고, ‘나’는 평생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중년이 된 ‘나’는 현실과 꿈이 뒤섞인 듯한 그 도시로 다시 들어가게 되며, 그곳에서 잃어버렸던 시간과 기억, 사랑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도시는 감정이 억제되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장소로 묘사된다. 등장인물들은 ‘벽’ 안과 밖을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 감정을 점검하게 되는데, 이 ‘불확실한 벽’은 인간 내면의 경계이자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을 가르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무라카미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와 철학적 사유, 문학적 은유가 돋보이며, 독자는 읽는 내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소설은 사랑의 본질, 시간의 흐름, 자아의 지속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지며,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독자에 따라선 다소 느리거나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불확실함 자체가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삶의 본질은 언제나 모호하고, 사랑과 상실은 늘 불완전한 형태로 남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감정의 미세한 숨결을 자극하는 작품이었다. 처음엔 다소 낯설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휘둘리는 듯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상실과 기억,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라는 공간의 은유적 의미였다. 이 도시는 외부와 단절된 채 감정이 억제된 세계지만, 그 안에는 과거의 기억과 상처가 고요하게 응축 되어 있다. 그곳은 내가 외면하거나 잊으려 했던 내면의 한 조각이기도 했다. 소녀를 잃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누구나 가슴속에 묻어둔 어떤 사람, 혹은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작중 인물들이 도시의 벽을 넘나드는 장면은 나 역시 오랜 시간 지닌 상실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또한 이 소설은 무언가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다. 하루키는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점이 특히 와 닿았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 기억조차 불확실한 벽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읽고 나면 뚜렷한 해답이나 결말은 남지 않지만, 오히려 그 모호함 속에서 오랫동안 여운이 맴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하루키 특유의 고독하고 정제된 감성이 깊이 스며든 작품이며, 스스로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 같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