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간적인 건축』 독후감 – “건축가의 양복을 헐렁하게 입다”
토마스 헤더윅의 『더 인간적인 건축』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모두가 똑같은 핏의 양복을 입는 회사에서 홀로 루즈핏의 양복을 입은 디자이너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는 "건축"이라는 조직에서 퇴사하지 않았다. 대신, 양복을 헐렁한 오버핏으로 바꾸고, 때로는 반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다. 그렇게 회색빛 도시의 틀 안에서 감각적으로 튀어나온 사람, 그게 바로 헤더윅이다.
그가 말하는 현대 건축의 문제는 '비인간성' 그 자체라기보다는, 지루함, 표준화, 반복성, 즉 근대 건축의 보편화된 양식이 주는 감정의 무감각이다. 그것은 마치 정해진 출근 시간과 업무 루틴에 갇힌 샐러리맨의 삶과 닮아 있다. 헤더윅은 이런 구조를 정면으로 부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느낌 있는" 변형을 통해 반항한다. 바로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더 인간적인 건축’이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떠올렸다. 라이트는 곧게 자란 나무가 인간의 쉼터가 되는 것처럼,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건축을 추구했다. 그의 건축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인간은 그 자연 안에서 안정을 느낀다. 이에 비해 헤더윅은 나무를 중심에 두고 철골을 감싸듯, 인공적 구조물 안에 자연의 감성을 심어 넣는다. 비록 그 형태는 금속성과 구조적 강인함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바람, 빛, 곡선, 질감 같은 감각적 요소들이 살아 숨 쉬며 인간과 자연이 다시 조우하는 공간을 만든다. 라이트가 자연을 ‘닮는’ 건축을 했다면, 헤더윅은 자연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건축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자연이란 존재가 본질적으로 양면성을 가진다고 느낀다. 나무 그늘처럼 포근한 자연도 있지만, 칠흑 같은 야산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는 인간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헤더윅은 이처럼 모순된 감각을 건축 속에 담아낸다. 그의 건축은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편안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이질감과 호기심, 낯섦과 친숙함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그는 라이트의 유기적 건축을 현대인의 감정 구조에 맞게 재해석하고 계승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미감의 차이로 보이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공동체적 삶에서 점차 개인주의적 감정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으며, 동시에 도시화는 공간을 효율성과 기계적 논리로 채워왔다. 그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감각적으로 무뎌지고, 정서적으로 고립된다. 헤더윅의 건축은 이 메마른 감각에 충격을 가하며, 인간의 ‘감정’을 다시 깨우는 건축이다. 그래서 그의 공간은 때로 불친절하고, 낯설고, 예상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사람은 자신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헤더윅의 건축은 순박한 시골청년이 착하고, 차가운 도시인이 나쁘다는 이분법을 넘어, 오히려 도시인의 날카로움 속에 담긴 정제된 감각과 세련됨을 드러낸다. 그의 공간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기계적이면서도 인간적이며, 날카롭지만 동시에 다정하다. 이처럼 『더 인간적인 건축』은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감각과 감정, 인간성과 연결된 공간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이 책을 덮은 후, 나는 생각했다. 건축은 단지 거대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서를 입고 있는 감각의 외투다. 어떤 건축은 정장을, 어떤 건축은 티셔츠를 입고 우리를 마주한다. 그리고 헤더윅은 정장을 입되, 그것이 반드시 불편할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준 사람이다. 그의 건축은 차갑지만 세련되고, 도도하지만 정서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현대 도시인의 자화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