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비정근』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이기심과 상처,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범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답게 단순한 범죄소설의 틀을 넘어서,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를 통찰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정근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자주 근무지를 옮기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소설은 다양한 근무지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도난 사건부터 살인 사건까지 넓은 범주의 범죄 에피소드를 다루며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다. 사건은 단순해 보이지만, 인물들의 과거와 얽힌 감정,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인간 심리가 드러난다. 작가는 각 등장인물들에게 고유한 사연과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독자에게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넘어서, ‘왜 그랬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느끼는 충격보다, 그 사람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먹먹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작품 속에는 가족 간의 갈등, 사회적 고립, 경제적 불안정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녹아 있다. 특히 인간관계의 단절이 어떻게 사람을 무기력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끄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범인이 밝혀졌을 때 단순히 그를 비난하기보다, 오히려 그 이면의 아픔과 외로움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접근은 독자로 하여금 도덕적 판단을 보류하게 만들며, 끝내 스스로에게 "나는 다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또한 히가시노 작가 특유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유지시켜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시간의 흐름을 교차시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고, 치밀한 복선과 인물 간의 미묘한 대화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모든 단서가 제자리를 찾아갈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성취감까지 느끼게 한다.
『비정근』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인간은 타인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무심함이 오해와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오해가 쌓였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에 쉽게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진심 어린 관심과 공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접근한 독자에게, 인간 내면을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뜻밖의 경험을 안겨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사회, 범죄와 감정의 연결고리를 통찰력 있게 조명하며, 독자에게 오랫동안 사유할 거리를 남긴다. 『비정근』은 미스터리의 재미와 인간 심리의 깊이를 동시에 갖춘,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작 중 하나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