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빨치산의 딸로 데뷔하여 여러 작품에서도 현대사의 상처와 가족사가 담겨있는 여러작품이 있다 한다. 나는 이번에 읽은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이책은 딸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상실'로 시작되는 무거운 이야기지만 내용 전개와 분위기는 예상보다 가볍고 유머스럽기까지 하다.
딸에게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이념과 가치관이 분명한 사람이지만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추억하며 마치 모순적인 인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못마땅해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조금씩 다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게 된다.
혈육이지만 평생 가까워질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 정치 견해가 달랐지만 투닥거리며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 아버지의 '담배 친구'였던 노란 머리의 어린 소녀.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은 아버지와 말로는 다 하지 못할 공감과 위로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문객들 사이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 공감이 있다. 조문객들 중에는 어머니의 옛 시동생들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들의 형과 가까웠던 벗이자 정치적 동지였기도 했다. 죽은 형의 아내를 가로챈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존경과 연대의 기색으로 장례식장에 머물렀다. 서로를 향한 미움이 아닌 더 넓은 맥락에서의 이해와 동질감을 품고 있던 것이다.
인간관계는 단순히 흑백으로 나뉘지 않으며 과거의 상처와 얽힌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고 해석될 수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딸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딸이 아버지와의 간극을 조금씩 메워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조문객들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소소한 추억과 오래된 사진들을 꺼내 놓고, 그 모든 순간들이 딸과 아버지를 잇는 다리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