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최근 유명 배우가 출연한 영화로 먼저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소설로 접한 안중근은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한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기 전과 사살하기까지,그리고 사형을 선고 받고 죽음을 당하기 까지의 내용이다.
1908년 1월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11살 황태자 이은이 도쿄의 황궁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한 제국의 황태자를 수행한 이토 히로부미는사실 수행원이라기 보다 인질범을 붙잡은 호송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토는 황제와의 만남 후,조선의 민심이 들끓고 있다는 보고에 미개한 군중을 군대를 써서 제압하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안중근은 자신과 아들에게 세례를 준 늙은 서양인 신부에게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날 것이라며 인사한다.
늙은 신부는 그가 왜 먼 길을 가는지 알기에 붙잡아두려 하지만 셋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안중근은 훌쩍 사라지게 된다.
안중근이 연해주에서 의병대는 어려움에 부딪혀 흩어지고,이토 히로부미가 만주에 온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게 된 안중근.
덩치가 작은 이토의 사진을 본 순간 안중근은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의병대에 함께 있던 우덕순을 찾아간다.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던 동갑내기 우덕순 에게 그는 이토가 온다고 말한다.
주저 없이 안중근을 따라 나서기로 결정한 우덕순.
두 사람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쏘기로 결심하고 하얼빈 행 기차에 오른다.
안중근은 우덕순과 하얼빈 번화가에서 양구이를 먹고 총 쏘러 갈 때 입자며 옷을 사러 가자고 한다.
잡힐 때 깔끔한 게 좋겠다며 머리도 깎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도 찍게 된다.
러시아인 사진사가 닷새 후에 사진을 찾아가라며 손가락을 펼쳤고,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는 두 사람 다 사진을 찾으러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 정확히 열차가 도착할지, 표적의 위치는 어디일지, 경비병들을 뚫고 조준이 가능할지 알 수 없어서 하얼빈역 전 역인 채가구역에는 우덕순이 ,하얼빈 역에는 안중근이 대기해 있기로 한 결정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준비를 마친다.
이토 히로부미 환영 인파가 북적이는 하얼빈역, 영하로 떨어진 10월에 안중근은 새 옷을 입고 하얼빈역 대합실 이층 다방에 앉아서 차를 주문한다.
다방 벽시계를 보며 덕순의 성공, 실패를 가늠하는 안중근.
덕순이 총을 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열차는 하얼빈 역으로 올 것이고 그 기회는 안중근이 얻게 된다.
환영 인파가 일장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 사이로 다가오는 열차.
손을 흔들며 열차에서 내려서는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은 러시아인들 틈새로 방아쇠를 당긴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 역은 적막했다.
하얼빈,코레아 후라.(한국 만세)
안중근과 우덕순은 체포되었다. 이름은 안응칠,나이는 서른한 살,직업은 포수다.
석 달간 진행된 신문에도 조금의 후회도 드러내지 않는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안중근은 죽음은 각오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담은 책을 쓸 기간이 촉박 하다는 사실만 아쉬워할 뿐이죠.
안중근은 동생에게 자기가 죽으면 하얼빈에 묻고 독립이 되면 뼈를 한국으로 옮기라는 유언을 남긴다.
사형일 아침, 안중근은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두루마기와 바지를 입었다.
3월 26일 이었고, 안중근의 시체는 유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감옥의 공동 묘지에 묻히게 된다.
책 하얼빈은 안중근을 떠올리면 항상 같이 따라오는 열정에 비해 아주 담담한 어조의 작품이다.
안중근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이런저런 말들을 별로 더하지 않아 더욱 현실감을 주었다.
31살,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아들이자 형인 그의 위치를 그가 주저 없이 버리고자 했을 때 그 결심은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을까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안중근 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독립을 위해 힘썼던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