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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5.0
  • 조회 227
  • 작성일 2025-06-24
  • 작성자 박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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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당시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흰』은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매우 개인적인 책으로 추천합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언니와 첫 딸을 홀로 낳고 잃은 젊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작가에게 있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책을 덮자 방 안 공기가 한결 밝아졌다. 눈발이 새벽 창가에 살포시 내려앉을 때처럼, 어디선가 흰빛이 번져 든 기분이었다. 한강의 '흰'은 줄거리로 끌고 가는 작품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언니를 기억하며 화자가 바르샤바 골목을 거니는 동안, 독자는 사건 대신 ‘흰 것들-배냇 저고리,소금,눈,설탕-이 불러내는 이미지와 정서를

따라가게 된다. 짧고 간결한 문장들이 이어지다 중간중간 숨을 고르는 빈칸이 등장하는데

그 여백이 오히려 이야기를 깊게 만든다.

읽는 내내 흰색의 양면성을 떠올렸다. 깨끗하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차갑고 서늘하다. 작가는 그 미묘한 온도를 빌려 상실을 다룬다. “흰색이라서 가능한 애도”라고 해야 할까. 눈송이가 땅 위에 내려앉으면 사라지는 것처럼, 내 안의 낡은 기억도 조용히 녹아드는 동시에 번져 남는다. 한강은 이 과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수다 대신 침묵을 선택하고, 그 침묵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공백을 메우도록 만든다.

그러다 보니 책은 빨리 읽히지 않는다. 어느 순간 화자의 언니 이야기가 내 기억 속 다른 얼굴들과 겹쳐지고, 바르샤바의 잿빛 풍경이 오래전 내 눈앞 풍경과 맞물린다. 그때 느껴지는 먹먹함은 불편하기보다 묘하게 위로가 된다. 상실은 없었던 일로 지워지지 않고, 흰색으로 옷을 갈아입어 곁에 머물 뿐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읽고 나면 흰 종이 한 장을 꺼내게 된다. 첫눈이 내리던 날의 공기, 새벽에 빨래를 널 때 느꼈던 비누 냄새, 병원 복도를 채우던 형광등빛 같은 자잘한 기억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글씨마다 조용한 온기가 번진다. 아마 작가도 이 목록 쓰기를 통해 상처를 다독였을 것이다.

'흰'은 화려한 이야기 대신 조용한 빛을 건넨다. 흰색이 가진 부드러운 밝음과 서늘한 그늘을 동시에 보여 주며, “잃어버린 것들을 부드럽게 끌어안아도 괜찮다”고 속삭인다. 서랍 속에 묻어 둔 오래된 사진처럼, 가끔 꺼내어 들여다볼 때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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