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 태어난 스토너는 부모님을 돕다가 농대를 가라는 부모님 말에 진학하고 문학에서 영문학으로 진로를 변경하여 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리고 한눈에 반한 여자를 만났지만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고 원만했던 관계가 와이프의 방해로 소원해진다.
책도 쓰고 유능했음에도 제자와의 갈등, 동료 교수의 갑질로 대학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 부교수로만 지낸다.
여제자와 불륜에 나이 들어 암에 걸려 와이프의 돌봄을 받으며 죽음을 기다린다.
스토너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불행은 불행대로 두고, 새로운 행복을 찾기위해 긍정적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보고 새로운 행복을 찾았을 때에는 충동적으로 보일 만큼 열정적으로 행동한다.
딸이 엄마의 같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되고 알콜에 빠지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
여기서 스토너는 큰 욕심도 없고 동료 교수의 갑질에도 꾹 참고 견디는 장면은 측은하다 못해 답답하다.
여제자와 사랑에 빠질 때는 정신적 사랑만이 아닌 선을 넘어서 놀라긴 했다.
스토너가 내성적인 성향으로 나와 바람도 쉽게 피지 못할 줄 알았다.
마지막에 죽음을 앞두고 독백처럼 생각하는 부분에 묵직한 여운이 느껴진다. '나는 무성을 원했나?"
나도 지금 행복한가,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 오는 건 아닌가, 이렇게 산다고 실패한 인생인가...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결국 암에 걸려 그동안 감내했던 것들이 신체에 '암'으로 발현되지 않았나 싶어 동화 속 이야기 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를
기대한 나는 새드엔딩으로 결말을 내렸지만 보는 이 마다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농부의 아들로서 집안의 농사를 물려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삷을 살다가 퇴직했고 침상에 누워 있을 때는 와이프가 보살펴주고 친구가 병문안을 와주면서
고독하지 않게 죽었으니 ..이걸 새드엔딩이라고 해피엔딩이라고 해야하나. 감내하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지내면서, 평범해서 불행한 것일까 평범해서 행복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