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에서는 아래 세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중심이 이동한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다양한 비극을 뷔페처럼 차려놓는다.
또 그 비극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끊임없이 읽는이를 힘들게 만든다.
경희를 사랑하는 창호는 북한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요셉은 창호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 경희와 혼인하라며 남아줄 것을 요청한다.
부상을 입고 돌아온 이후 요셉과 경희의 사이는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헌신과 희생, 의리로 버티는 환자와 간병인이었다.
경희도 이성적으로 창호를 좋아하고 있었고 세 사람 모두 이 상황을 인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희는 끝까지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창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그러한 그녀의 곧은 지조와 절개가 바로 창호가 경희를 사랑하는 큰 이유였다.
이루어지 지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이어지게 된 짝사랑이었다.
창호는 북으로 떠나고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또다른 슬픈 결말이었으리라...
경희도 그저 아름답고 가녀린 여성이 아니라 본인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내면이 강인한 멋진 여성이었다...
선자의 첫째 아들 노아.
노아는 선자와 한수의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고 그곳에서의 생활도 착실히 해나간다.
그러다 예쁜 일본인 여자친구 아키코도 사귀게 된다.
평소에 노아의 후원자에 대해 궁금해하던 아키코는 결국 한수와 노아와의 식사자리에 불쑥 끼어들어 노아를 화나게 한다.
헤어지면서 아키코는 한수와 노아가 부자관계인 것을 눈치채 말하고, 노아도 아키코 덕분에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노아는 결국 선자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진실을 알게된 노아는 충격을 받아 학교도 자퇴하고 멀리 떠나 종적을 감춰버린다.
이후 노아는 나가노에서 일본인인척 행세하며 새로운 삶을 일궈나간다.
파친코에서 일자리도 구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선자와 한수에게는 신세진 돈을 갚기만 할뿐 다른 연락은 일절 하지 않는다.
수년간 힘들게 방방곡곡 찾아다닌 끝에 한수와 선자는 결국 노아를 찾아내고
노아가 잠적한 마음을 헤아려 그 앞에 나타나지 말자는 한수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자는 노아 앞에 나타나 같이 집으로 가자고 설득한다.
노아는 출생의 비밀을 덮고 일본인으로 살고 있던 새로운 인생이자 연극같은 삶이 끝났음을 느끼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출생의 비밀은 노아에게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저주였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사회에서 조선인으로서 느껴야하는 이방인취급, 차별로 힘들어 하고 있던 그였기에
본인이 조선인 중에서도 가장 악질인 야쿠자의 핏줄이라는 사실은 본인의 존재자체와 모든 노력을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으리라.
비록 한수의 혼외자로 태어났지만 노아는 이삭의 밑에서 그 누구보다도 선하고 올바르고 총명하게 자랐다.
어쩌면 조금만 더 한수를 닮아서 인생의 부조리들에 면역이 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지는 않았을텐데...
그의 정체성에 가장 영향을 덜 주었던 생물학적 아버지의 존재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부정하게된 그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출신. 그사람이 어떤 노력을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어떤 외부요인이자 결과이기에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부정해야하고, 삶에 대한 자격까지도 스스로 거두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노아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조선인들이 일본인에게 핍박받던 비극적인 시대 속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난 죄?
야쿠자와 같이 일했던 한수가 유부남인 것을 모르고 사랑에 빠진 선자의 아들로 태어난 죄?
노아는 무고했으나 스스로를 심판하는 본인만의 법정에서 무자비한 재판관이 되어 사형을 선고해버렸다.
어떻게 보면 나라를 잃게 한 선조들과 불륜을 저지른 한수의 업보가 노아를 죽인 것이기도 했다.
형과는 달리 공부에 재능이 없던 모자수는 일찌감치 파친코 사업가 고로의 밑에서 일을 배우며 사업수완도 익혀나간다.
그러다 양장점 직원인 똑똑하고 야무진 유미와 사랑에 빠져 귀한 아이 솔로몬도 얻게 된다.
창부이자 알코올중독자이던 어머니와 감옥을 드나들었던 폭력적인 술주정뱅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유미는 시대의 업보와, 부모의 업보를 모두 이겨내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가 강한 신여성이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조선인으로, 나쁜 출신으로 살아야하는 괴로운 삶을 벗어던지고 새 삶을 얻기를 소망했다.
재봉사로서 열심히 일하고, 영어도 공부하며 꿈을 실현시키고자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허무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하늘도 참 무심한 것이 노아에게는 출신의 무게를 이겨낼 정신력을 주지 않았고,
더 강한 의지로 본인의 출신을 돌파해내려던 유미에게는 그 노력의 결실을 꽃피울 여생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모자수도 시간이 흘러 에쓰코라는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파친코 사업이 잘되어 부유한 삶을 누리며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의 연인 에쓰코는 파친코 사업을 하는 조선인과 결혼하는 것을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해 연인관계로만 지낸다.
심지어 그녀는 아이 셋이 있고 본인이 불륜을 저질러 이혼당한 여자였다.
그녀는 불륜을 저지르고 가정을 스스로 파괴한 대가로 세 아이중 두명에게는 엄마 대접도 받지 못하는데
딸 '하나'만 학생신분으로 임신을 하게되자 엄마에게 도망치듯 오게 된다.
엄마가 그렇게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가정을 무너뜨렸으니 그 밑에서 딸도 뭘보고 배웠겠는가...
그나마 에쓰코는 본인이 지은 죄가 있어서 다른 인물들과 달리 동정심이 크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지은 잘못이 있음에도 조선인 야쿠자와 결혼하는 것이
일본남자에게는 선택받을 수 없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낙인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 알량한 체면이 가소로웠다.
에쓰코의 딸 하나는 뱃속의 아이를 지우고 순진한 솔로몬과 육체적 관계를 맺고 솔로몬의 마음도 얻는다.
그러나 마지막 양심은 있었는지 홀연히 그를 떠나 접대부로 살다가 훗날 젊은 나이에 성병을 얻고 일찍 생을 마감한다.
하나도 원치않는 가정의 불화로 그녀의 삶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삶을 파괴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었으므로 그녀에게도 큰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솔로몬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버지와는 달리 양지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영국 투자은행의 일본 자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다 가즈라는 일본인 상사에게 뒤통수를 맞고,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사실 뒤통수가 아닐 수도 있지만...모든 정황은 수상하기만 하다.
가즈가 솔로몬에게 내린 미션은 부동산을 팔고 싶어하지 않는 노부인을 설득해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모자수와 오랫동안 같이 일한 '고로'가 도와주게 되는데 그 거래 이후 갑자기 노부인이 죽게된 것이었다.
가즈에 따르면 마치 부동산 거래를 위한 계획적 살인처럼 보여 프로젝트가 아예 보류되었다는 거였다.
게다가 모자수와 고로의 떳떳하지 못한 처지로 인해 솔로몬은 더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의 출신이 그의 날개를 부러뜨린 것 같았다.
직장을 잃은 뒤 솔로몬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기로 한다.
솔로몬은 나쁜 여자 '하나'를 첫사랑으로 마음에 품다가 여자친구 피비가 있음에도 하나의 마지막순간까지 돌봐주었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으라고 한것도 하나의 의견이었다
보살같은 좋은 여자친구 피비가 계속 곁에 있었지만 솔로몬은 결국 그녀와 결혼하지도 않았고
하나의 의견에 따라 일본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솔로몬과 결혼을 생각하며 일본까지 따라왔던 피비만 불쌍한 신세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가 솔로몬을 건드린 것이 나비효과처럼 피비의 삶에도 피해를 주게 된 것이었다.
아들만은 본인과 다른 깨끗하고 번듯한 삶을 살기를 바랬던 모자수도 결국 아들의 결심을 받아들이고 파친코 일을 물려주게 된다.
이외에도 모자수를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친구 하루키
그런 하루키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장면을 두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는 그의 아내 아야메
그녀가 받았을 상처도 상상하기 버거웠고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의 여러 서사들 밑에 언제나 깔려있는
선자와 한수의 관계
그토록 원망했음에도 또 한편으로는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선자의 마음도 이해가 갔고
선자를 속여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지만
그 이후로 최선을 다해 본인의 아들뿐만 아니라
선자와 그 가족들까지 모두 책임지려 했던 한수를 마냥 비난하기도 힘들었다.
한수가 야쿠자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한평생 어긋날 수 밖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존재함을 알지만
그 둘이 함께하지는 못하는 안타까운 관계...
+ 에쓰코가 어린 솔로몬의 생일파티를 열어주면서 새엄마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낄 때
솔로몬이 어른스럽게 에쓰코를 오히려 위로해주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솔로몬의 말을 통해 에쓰코가 본인의 죄가 씻겨지는 듯한 해방감과 희망을 가지게 되는데
(에쓰코는 진짜 가정파탄범이어서 좀 불쾌하긴 했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다시 희망과 기회, 용서,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음
그 어리고 순수한 솔로몬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마치 죄없는 예수가 세상사람들을 구원하는 성경 속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고 뭉클했다.
"근데 난 오늘 태어났잖아요. 자기가 태어난 순간과 거기있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우습지 않아요?
다 나중에 남한테 듣잖아요. 아줌마는 지금 여기 있어요. 나한테는 아줌마가 엄마예요"
에스코는 손바닥을 펴서 입을 틀어막고 솔로몬의 말을 되새겼다. 후회스러운 날들 다음에는 또 다른 날이 오기 마련이었고,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마침내 에쓰코가 물을 잠그고 물먹은 노란 스펀지를 개수대에 내려놓았다.
구부러진 청동 수도관에서 마지막 물 몇 방울이 떨어졌고, 이내 부엌이 조용해졌다.에쓰코가 손을 뻗어 생일을 맞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노아도 솔로몬을 통해 다시 한번 삶을 이겨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