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배우는 멸종과 진화>에는 곤충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진화도 함께 살펴보는 내용들로 구성된다.
' 윌리스턴의 법칙'이란 생명체 의 단순하고 동일하게 반복 적 이였던 기관이 그 수가 줄어들면서
기능적으로 전문화되는 진화 현상이다.
곤충의 다리와 날개에서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는데, 곤충의 조상은 단순하고 동일한 반복 적인 다리에서 6개의 다리로 그 수를 줄이고,
각 다리의 기능을 매우 전문화시켰다.전문화의 예로는 사마귀의 앞다리를, 수를 줄인 예로는 파리의 날개를 들 수 있다.
파리는 뒷날개를 퇴화 시켜 앞날개 두 장으로만 나는데, 퇴화된 뒷날개는 평형곤이 되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특화하여 사용한다.
딱정벌레들도 등딱지의 두꺼운 날개와 속 날개로 분화 시켜 정작 날때는 속날개로 그 기능을 전담하는 편이다. 진화는 늘 단순한 방향으로 흐른다는데 .이러다 날아다니는 곤충들의 날개 수가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 다양한 유전 정보를 사전에 갖고 있다가 환경이 바뀌면 이를 발현시켜 다양한 표현형으로 적응하는 이 잠재력을
'표현형적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이라고 한다.
2014년 8월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서 풀무치가 대 발생하여 피해를 준 적이 있다. 메뚜기떼는 우리나라 문헌에 자주 그 기록이 발견된다.
숙정 10년에는 경기도 포천, 26년에는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정조 5년에는 호남 지방에서 메뚜기떼가 심각해지자 해충을 쫓아내는 제사인 '포제' 를 지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메뚜기들은 왜 잘 가다가 한번씩 대 발생을 하는 것일까?
메뚜기들은 장내 미생물이 특정 페로몬을 내뿜을 경우, 군집형으로 몸이 바뀌고, 서로 떼를 지어 움직이고 행동 패턴이 바뀐다고 한다.
고독형은 초록색에 몸 크기도 군집형보다 크고, 개별 행동을 하지만, 약충 시절에 집단 내에서 개체 수가 많아지면 비행에 적합한 군집형의 모습으로 바뀌어 함께 몰려 다닌다고 한다. 메뚜기들은 어쩌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인간도 호르몬의 영향을 꽤나 많이 받는 동물인데, 메뚜기도 그런 호르몬의 조종을 피할 수 없었나 보다.
동물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어필을 한다. 스스로의 몸을 알록달록하게, 혹은 특정 기관을 크거나 길게 발현시키기도 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천적의 공격도 감수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감수하는데, 이것을 '핸디캡이론' 이라고 명명하며 단순히 생물들의 관찰을 모아 통찰한 것에 그치지 않고, 사치와 투자 그리고 수익에 대한 이론을 수학적인 모델이 만들어져 있다. 인간이라면 이런 이론을 분석하며 이성적으로 검토해 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미연에 막을 수 있는데 동물들은 어떻게 그 정도를 선택하는 걸까? 특히 짧은 생을 사는 곤충의 경우는 자칫 과한 사치가 죽음을 불러 올 수도 있으니 상당히 아찔 하다. 하지만 이 모두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또한 하나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위험한 선택을 하는 유전자는 죽음으로 차후 그런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으니 말이다.
"멸종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멸종의 역할이고, 진화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이미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 아닐까? 인간이 원인이 되든 아니든 간에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일어 날 것이라는 말에 일면 공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 진행 상황이 긴박해졌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 또한 우주가 움직이는 과정의 하나일 뿐. 우주상의 작은 티끌만한 존재인 인간이 그 과정의 한 주름이라도 잡아 큰 흐름의 변경이 가능 할까 싶기도 하다. 이런 진화와 멸종 관련 이야기를 접할 때만 초연해지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지나온 진화의 과정을 살피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