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학 분야의 책으로 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최근에 읽었던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이 이 책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분류학'과 '분류학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어릴 때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를 동경해왔는데, 그의 삶을 공부하다 보니 과학자와 스텐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라는 화려한 업적 뒤에 숨겨진 어두운 측면도 알게 된다.
저자가 어릴 적 그를 동경하게 된 계기는 그가 30년간 수집한 엄청난 양의 표본들이 지진으로 모두 부서지고 말았을 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물고기의 이름을 바늘로 꿰어 붙였다는 일화 때문이었다.
대체 그는 어떻게 그 엄청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묵묵히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저자의 탐색은 뜻밖에도 그의 어두운 측면에도 도달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도 '부적격' 인간들을 색출해 강제로 불임 수술을 하게 하는 등 우생학에 기반한 정책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을 초대 총장으로 만들어 준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 제인 스텐퍼드의 의문의 죽음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진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저자는 반대로 그 정책의 피해자들(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은 여성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그 인터뷰 끝에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즉 이 세계의 진화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고 그중에 하나인 우리도 다양성을 거스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우리 모두가 독특한 하나의 개체로서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상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먹이와 천적 정도만 구분할 뿐 그 이상의 구분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경계를 나누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어떻게든 구분하려 한다.
어쩌면 인간이 이 정도의 문명을 이루고 생태계의 지배적인 종이 된 이유도 이런 '구분하는' 능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구분 능력이 지나치기 때문에 지금처럼 같은 인간 종 안에서도 서로 차별하고 싸우는 모습이 끊이질 않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