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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기심의권력으로읽는세계사:유럽편
5.0
  • 조회 353
  • 작성일 2024-12-02
  • 작성자 한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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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종교는 권력의 좋은 재료
​
첫 장 에서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이유가 목적인 아닌 수단이었음을 주장한다.

로마의 역사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빼놓을 수 없다

갈리아 전쟁(물론 카이사르 본인이 씀) 그리고 여러 자료에는 카이사르의 정치력과 군사능력을 칭찬하는데, 사실 카이사르는 포퓰리즘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종신 독재의 자리를 얻었고 자신을 신격화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카이사르를 반면교사로 삼아 제1시민임을 주장한 황제 아우구스투스 또한 원로원을 협박해서 권력을 가졌고 “존엄한 자”라는 칭호는 역사의 승자라는 증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탄압하고 박해하던 로마제국이 어쩌다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되었을까? 일단 기독교는 황제를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대상이 되었지만 군인황제시대 이후 로마를 4개로 분할해서 통치하던 시대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무론 디오클레티아누스까지는 기독교를 탄압했지만, 여러 명의 황제들로 나누어져 권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몇 몇 황제들은 기독교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 또한 후대의 중세 기독교인들에 의해 왜곡된 내용이라고 한다.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을 통합하기 위해 기독교 탄압을 중지하는 칙령을 인정했다는 것이 기독교 확산의 이유라고 한다.

​그 후 종교 분쟁이 심해지자

많은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을 공식화하고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했다. 기독교를 국교화한 테오도시우스 또한 로마제국의 통합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며 왕이 종교적 계시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중세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기독교의 확산은 종교에 대한 독실함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해 이용되었던 것이다.

​2장. 신성로마제국의 탄생

holy roman empire라고 불리는 이 거창한 이름의 탄생 또한 권력 다툼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동서로마의 분열 이후 종교적으로 다른 방향을 걷게 되었고 서로마 멸망 후 교회는 보호받을 대제국이 사라졌다. 그 상황에서 동로마는 그리스 정교회였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교황은 그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프랑크왕국의 샤를 마뉴나 신성로마제국의 오토1세의 보호를 받고 왕에게 서로마 제국 황제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렇게 교황과 세속권력의 동맹이 시작되었는데, 문제는 교황권과 세속권이 계속해서 경쟁하면서 ‘카노사의 굴욕’과 같은 사건이 터졌고 이는 교황권은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추락했다.

717년 성상파괴운동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결론적으로 동로마제국의 황제의 권한을 강화했다. 이후 로마 교황은 피핀 3세 그리고 카롤링거 가문의 샤를 마뉴와 손을 잡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탄생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개인적으로 ‘카노사의 굴욕’은 하인리히 4세가 맨발로 싹싹 빈 사건만 다루는데, 결론적으로 이후에 황제가 권력을 되찾아 자신을 파문한 교황을 끌어내렸기에 권력은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이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3장. 교황은 잔소리가 너무 심해

개신교의 전세계적 확산

국민의 20%가 믿는 종교, 개신교. 기독교 안에 천주교랑 개신교 등 여러 종파로 나워지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독일의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천주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이단으로 여겨지던 시절

얼마나 파격적인 행보인가

문제를 이 종교개혁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했고

이로인해 유럽대륙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

로마 가톨릭에서는 자신의 죄를 씻을 면죄부가 유행했는데, 이 방법 중 하나가 십자군 전쟁이었다

“연옥” 또한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단테의 신곡을 읽었다면 익숙한 단어로 경미한 죄가 정화되는 장소(천국 가기 전 대기실)이다.

그래서 이 연옥을 이용해 죽은 사람들이 연옥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는 면죄부를 판것이다.

물론, 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성경의 번역과 설교를 금지했던 교황을 비판했던 위클리프, 후스 등은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화형당했다.

이렇게 많은 지식인들이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고 있었고, 마틴 루터는 이에 불을 붙힌 것이다.

교황과 성직자의 권력이 강한 것에 불만이었던 왕과 귀족들은 루터를 지지했고

그 이후 보헤미아-팔츠 전쟁, 텐마크 전쟁, 스웨덴 전재, 프랑스 전쟁 등 을 겪어야했고

1648 유명한 베스트팔렌조약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4장. 흑사병과 유대인 박해

어쩌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이있을 수도 있는 챕터다.

700년 전 코로나 보다 더 심각했던 펜데믹 흑사병에 관한 내용인데,

흑사병은 유럽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놨다.

인구의 1/3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신분제가 흔들렸고

전통적인 사회제도인 농노제를 없어지게 해서

어찌보면 근대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균의 존재를 몰랐던 유럽인들은, 평소 멸시하던 유대인들의 탓으로 돌렸다.

과거부터 유대인들을 탄압했던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죽인

장본이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는 사탄과 같은 존재였다.

20세기 까지 수많은 핍박을 받았고 여전히 이스라엘에서 종교적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유대인이 부를 쌓은 계기는 길드에서 받아주지 않은 탓에

성경에서 금지하는 금융업을 시작한 시점이다. 그래서 항상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자로 묘사되곤 한다.

그렇게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적대감을 가진 민족(유대인, 몽골인)등이 흑사병을 퍼뜨렸다고 생각했다.

​흑사병으로 인해 예술 또한 죽음을 상징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인구가 부족하다보니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기도 하는 등

유럽사회는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인간에 집중하는 ‘인본주의’라는 흐름에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부상하여

수 많은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었고, 현재 유럽여행을 가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단 것이다.

​5장.러시아 정교회의 탄생

​기독교의 새 분파, 라시아 정교회는 생소한 종파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슬라브 국가의 기원 키예프 루스가 탄생하였는데, 국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권력 강화를 이해 동로마 제국에서 정교회 세례를 받으며 유입되었다.

물론 동로마 제국과 완전히 동일하게 국교화하자니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기에 토착종교와 섞여 러시아 정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아시아를 휩쓸던 몽골에 의해 키예프는 함락되었고 그 지역은 킵차크한국으로 몽골에 속국화되었다. 이 시기 모스크바 대공 이반1세는 키예프 대주교에게 이사를 설득했고

모스크바는 정교회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모스크바를 제 3의 로마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착수되었고

동로마 제국과 결혼 동맹을 맺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반 3세는 자신을 차르로 칭하여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라는 정체성을 형성해갔다.


6장. 지구에서 사라진 폴란드

폴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낀 지리적 위치 때문에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등이 땅따먹기를 했고 그렇게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독립하고를 반복하다가 지금의 폴란드로 독립을 했다

이는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폴란드 귀족들이 한몫을 했는데,

요점만 말하자면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때처럼 나를 팔아먹은 것이다

이후 독립해서 바웬사?라는 인물 등장 이후 민주화를 이룬 것으로 알고 있다

7장. 왕과 귀족의 국민호구 만들기 작전

영국 의회 탄생에 관한 내용인데, 영국이 청교도 혁명, 명예혁명으로 마그나 카르타, 권리장전 같은 문서 만들고 왕 권력 낮추고 의회가 정치하고 이런 요소들이 이상적인 정치요소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뭐 이런 내용이다

마그나 카르타도 역사책에는 왕의 독재를 막고 귀족의 권리를 강화한 문서라는 의의로 서술되는데, 사실 나중에는 왕이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렇게 왕과 귀족들이 권력 다툼을 하면서 의회가 만들어졌고 ( 시몽드 몽포르 라는 인물이 유명함)

명예혁명으로 이 긴 싸움은 끝이 난듯 보였다

이후 의회가 시민들에게 선거권을 준 이유는 “곡물법”이라는 문제 때문이었는데,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던 의회가 곡물법을 폐지하기 위해 투표권을 확대하여 민주주의를 발명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8장. 당신들은 원래 위대한 민족이에요

8장은 핀란드 독립에 관한 내용인데

아무래도 핀란드 역사는 좀 생소하다보니 처음 보는 사건과 인물이 많았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국민 정체성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민족 정체성이 없던 핀란드가 스웨덴에 편입되어 스웨덴인이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러시아 침략이후 ‘핀란드인’이라는 정체성이 생겨 이를 토대로 국가를 건설했다는 주장인데,

우리나라 처럼 빼앗긴 국가를 되찾는다는 개념과 조금 달라서 특이햇던 챕터였다

9장. 살기힘들지? 황제정으로 돌아가자

​9장은 나폴레옹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엇던 것 같다.

어린시절 위인전에서 읽었던 나폴레옹

그는 정말 위인인가? 라는 질문에 이제는 쉽게 답할 수 없지만 난놈이는 것은 확실하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국민들이 국왕도 아니고 황제가 되어 이를 지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혁명이 일어나고 다양한 정부가 들어섰지만 국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폴레옹의 이미지 마케팅은 이를 비집고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나폴레옹의 위대함 보다는 언론의 파급력과 철저한 설계로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프랑스사를 계속해서 읽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긴하다.

포장지를 벗기고 진실에 다가가자라는 것이 이 챕터의 교훈이다. 국민들의 입맛에 맛게 정치를 하다보면 결국 더 큰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과 리더십이 있는 군인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엘바섬을 탈출해 파리로 돌아오며 잠시나마 권력을 되찾은 사건은 그를 지지하는 군인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10장. 혐오만큼 효과 좋은 건 없지

마지막 장이 아무래도 현대사회와 가장 연결되어있지 않나 싶다.

‘유대인 혐오‘는 사실 히틀러 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첫 페이지가 “히틀러만 비판해서 되겟는가?“ 이다

유대인 혐호는 고대부터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의 역사는 나폴레옹과 대항하며 게르만인이라는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소독일주의로 인해 오스트리아와도 결별(?)을 하게되어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을 하며 시작된다.

유명한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1세의 합작으로 독일이 통일되만, 혼란이 있었기에 공약으로 유대인 혐오가 유행한것이다.

아무래도 기독교 국가에서는 대대로 종교적 이유와 유대인을 싫어했고, 마땅한 직업을 가지지 못해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어 더더욱 미움을 받았다. 경기 불황+ 정치적 몰아감으로 유대인은 악마라는 인식이 씌워졌고 히틀러가 게르만족의 부흥을 내세우며 유대인을 청소하겠다는 말에 국민들의 지지가 쏟아진 것이다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인해 온 국민이 이성을 잃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히틀러만 악마였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다.

이는 죽음의 수용소와 같은 책을 통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햇던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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