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으로,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것도 누가 보면 블랙
코미디라고 할 법한 방식으로요. 아버지는 노동절에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소박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와 사촌 오빠의 앞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자의로 그런 일이 발생한 건 아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습니다.
그는 20대에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으며, 약 4년 동안 공식적인 사회주의자로 활동했고, 그 후에는 그 후 20년 정도
옥살이를 하다가 출소 후 고향인 구례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나는 아버지 없이 20여 년을 자라야 했으며, 아버지의 출신으로 인해 나의 사회생활이 일정 수준 피해를 보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는 생활력마저 바닥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노동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그를 위해 돈은 많이 쓰지 않았지만 남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퍼주는 '호구'였습니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겼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
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는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위해 빚보증을 서슴없이 서 주었고, 대신 농사일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던 아버지였지만 정작 그로 인해 나의 가족이 이득을 본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걸림돌이었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그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회고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약 3일 동안 진행되는 아버지의 장례식. 여기서 나의 역할은 상주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의무로 인해,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옵니다.
어린아이(=아버지의 담배 친구)에서부터, 전 아내의 동생까지 그 사람들의 부류 역시 다양합니다. 이들은 모두 아버
지의 살아생전, 그와 약간이나마 인연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추천 덕에 암내 제거 수술을 하고 결혼한 영자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고 잘 살고 있는 오촌 조카 경희
이들은 모두 아버지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덕에 그들의 인생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
들을 보고 나는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여느 장례식에서 보기 힘든 인물들도 옵니다. 전직 빨치산들입니다. 스무 명 남짓한 사회주의
자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와 추도사를 읊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 발짝 물러
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단지 한때 같은 이념을 가졌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추도하러 온 사람들을 보며, 나는 아버지가 평생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합니다.
이들은, 아버지를 자신의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위장자수를 했고(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느낌이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죠. 빨치산들은 단순히 과거 동료를 기리기 위해 먼 걸음을 했던 것입니다.
과거 우익 활동가였던 사람도 아버지의 장례식에 옵니다.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김상욱 씨는(아버지 이름은 고
상욱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장례식에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한창 사회 운동을 하던 시절, 김상욱 씨는 스물셋의 순경이었습니다. 빨치산들이 김상욱 씨의 일터를 쳐들
어왔던 날, 김상욱 씨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락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나의 아버지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제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여겼던 김상욱 씨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그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그 뒤로
김상욱 씨는 때때로 아버지에게 조금의 식량을 보냈습니다.
몇십 년이 지나고 감옥에서 아버지가 출소했을 때, 김상욱 씨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계속 고민하던 나는 대학동문이자 아버지의 막역지우인 학수와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학
수는 그가 아버지와 가까워지게 된 일화를 나에게 털어놓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학수가 아무리 자신에게 말을 놓으라고 해도 그를 '윤학수 씨' 혹은 '윤 군'이라고 불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수는 노인정에서 다녀오는 나의 아버지를 봤는데 얼굴에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학수는 이를 보자
마자 노인정에 달려가서 소리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