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머리를 막고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해온 사람들의 사연을 이야기 하는 소설이다.
아버지 고상욱씨는 전직 빨치산으로 약 20년 정도 감옥살이를 하고 환갑이 다 되어 고향인 구례 반내골 깡촌에 터를 잡고 초짜 농부를 시작했다. 생전 농사일을 해 본 적도 없이 '새농민"이란 영농 서적을 해법으로 삼아 문자 농사를 짓다 보니 현실 농사는 번번이 망하는 농사였다.
아버지는 1948년 초 유인물을 살포하다 체포되어 전기고문을 받고 후유증으로 눈은 사시가 되었고 임신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빨치산 동지의 형인 한의사가 지어준 한약 한제를 먹고 딸을 낳았다. 이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와 지리산의 '리'자를 따와 '고아리'라고 지었다.
아버지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 더욱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다. 큰집 사촌오빠 길수는 빨치산이였던 작은아버지 때문에 육사 합격은 했지만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가 연좌제가 풀려 공무원이 되었지만, 지금은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가 되어 작은아버지 상가에 조문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오빠의 뒷모습,
아버지 살아 생전 동네 신문배급소에서 사상은 다르지만 마음이 잘 맞아 아버지의 말년을 풍성하게 했던 국민학교 동창 박한우 선생은 학도병으로 끌려가 지리산으로 파견되었다. 박선생의 형제들은 지리산 빨치산이 되었고 박선생은 지리산 토벌대로 파병되어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며 살고 있는 박선생의 조위금 봉투에는 현금170,500원과 소주값, 담배값, 밥값이 적혀 있는 지출내역이었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후 박선생한테 맡긴 아버지의 용돈 20만원에 대한 내역인 것이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빨갱이 사상 때문에 평생을 미워하며 원수로 지낸 줄 알았는데, 여순 반란 때 아홉 살이였던 작은아버지는 평소 우상으로 여겼던 형을 찾는 군인들에게 자기 형이 면당위원장 고상욱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게 화근이 되어 마을은 불타고 할아버지는 사망하게 되어 평생 공포와 죄책감을 갖고 술에 취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세월이였던 문상객들은 친가 외가 친척들, 35회 국민학교 동창생들과 구례 사람들, 아버지의 빨치산 옛 동료들은 서로 연관도 없으면서 각자 자신들의 방식대로 아버지를 추도하는 장례식장의 모습이 평화롭다고 느끼며, 아버지의 모습은 가부장제를 극복한, 소시민성을 극복한 진정한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 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아버지는 몇 개의 얼굴 이였을까?
아버지를 화장하고 유골은 4년 동안 빨치산 활동 부대였던 백운산에 모시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평소 아버지가 잘 다녔던 길에 뿌리기로 한다. 구례 시내 아버지를 사회주의자로 만들고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던 '중앙교' 주위에 조금, 걸어서 학교를 다녔던 섬진강 다리 위에 조금, 반내골로 들어오면서 차장 밖으로 길 위에 조금, 반내골에 아버지의 흔적이 있을 여기저기에 쪼금씩...
그리고 마지막 아버지가 말년을 보냈던 삼오시계방, 오거리 하동댁 가게가 있던 자리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인연 모녀 둘과 함께 빨치산이 아닌 빨강이도 아닌 아버지를 떠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