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실제로 본적이 없다. tv나 영화에서 만 보았을 뿐, 예전 오키나와 여행을 갔을 때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본 적이 있다. 눈앞에서 유유히 헤엄쳐가는 거대한 물고기를 보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경외심같은 느낌이 있었다. 소설 고래 속의 금복이 바닷사 마을에서 고래를 보았을 때 가슴이 얼마나 벅찼을까? 고래라는 소설은 이야기의 전개와 연결 상상의 크기에서 마치 고래처럼 압도적인 경외심이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일단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천명관 작가가 영화시나리오를 쓰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이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자극적인고 재미있는 전개를 가지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래의 가장 큰 이야기의 흐름은 바로 금복과 그의 딸 춘희의 이야기이다. 춘희는 120키로의 거구의 통뼈에 힘이 장사인 여성이다. 사람과 물어뜯고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생식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소설의 주인공과는 사뭇다른 인물이다.
천명관의 고래라는 작품은 저명한 영국문학상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오른적이 있을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오래도록 베스트셀러를 유지한 대중성이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들 시도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극중 주요 인물인 춘희를 실제로 구현할수 있는 배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를 몇번이나 읽고 다빈치코드 영화를 본 일이 있다. 영화를 보기전에 상상에 따라 여러 얼굴이던 주요 인물이 영화를 본이후에는 영화속 인물로 고정이 되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글은 상상을 계속 펼쳐나갈 수 있기에 그 끝이 영상보다 더 광활하다. 영화는 반명 생각의 끝을 한정시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흥미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용이라고 강렬하게 주는 울림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속의 상상을 조금더 곱씹으면서 느끼는 것을 선호한다. 사실 고래라는 책은 과거에도 여러번 본적이 있고 이번기회에 다시 한번 보게된 좋아하는 글 중 하나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금복과 춘희의 모습을 상상하고 장명을 상상하는 호사를 오래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