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조선뿐만아니라 한민족 5천년의 역사를 구했다. 이순신이 없었거나 역할을 못했다면 현재 한반도 영토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일본말을 쓰고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400년전의 조선은 치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임진왜란 중 무능함을 드러냈던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은 성리학적 가치관, 중국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이후 성리학의 지배는 조선이 멸망하는 시점까지 계속되었다. 집 잃고 왜양간을 고쳤더라도 일본의 침탈로 인한 식민지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철저한 준비와 헌신으로 전란으로 부터 조선을 구해냈다. 반면 선조는 조선 백성의 명망이 왕인 자신보다도 이순신에 쏠리는 것을 막고자 이순신의 모함을 빌미삼아 파직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무능한 리더였던가? 1597년 2월 6일 이순신에 대한 파직 명령이 내려졌다. 이순신은 그 당시 선조의 지시대로 부산포 앞바다에 나가 작전 수행중이었다. 2월 25일 한산도로 돌와온 이순신은 그때 자신이 파직되었음을 알았다. 26일 한양으로 압송되었으며 10일이 소요되었다. 이순신은 그 열흘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조는 이순신에 대해 조정을 기만하고 임금을 무시하고 적을 놓아주어 나라를 저버렸으며 남의 공을 가로채고 모함하는 방자하다하여 죄를 물었다. 이른 죄에 대해 법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 죽어 마땅하다 물었다.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했다.
다만 정탁의 상소로 인해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정탁은 선조의 상소에서 "이순신을 살려주어야 임금인 선조가 더 돋보이게 된다"라고 상소를 올리니 본인의 이해관계를 살펴 이순신을 살려 주었다. 얼마나 간사한 인간이 조선의 리더였던가? 한탄스럽고 통탄할만하다. 이순신은 하옥된지 한달여후 4월1일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이순신은 효자였다. 난중일기에서 면면을 알수 있다.
이순신은 칠전량해전의 패전을 거친후 조선 수군을 재건했다. 이후 명량해전에서의 반전을 이끌어내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최종승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