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참회의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 갈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눈물방울의 흔적을 적어 내려갔다 구슬이 되고 수정이 되고 진주가 되는 눈물
한 방울, 피와 땀을 붙여주는 눈물 한 방울, 쓸 수 없을 때 쓰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 -본문에서-
작가 이어령은 2007년 세례를 받고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요즈음 나는 70평생 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삽니다. 세례를 받은 것과 시집을 낸 것이 그렇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면 망령이 났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그것을 점잖게 알츠하이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꼭 그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은 한 가지이지만 묻는 사람들의 말투는 제각각 다릅니다.
예수님을 이웃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하는 안티 크리스천들은 경멸조로 묻고, 카뮈의 경우처럼 신 없는 순교자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은 배신자를 대하듯 질책하는 투로 말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금시 혀라도 찰 듯이 혹은 한숨을 쉴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예수쟁이 됐다면서-"라고 내뱉듯이 비웃습니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누구도 내 면전에다 대고 '글쟁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어느새 나를 '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따금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욕쟁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아요. 화내지도 않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갑자기 성인이 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나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에 이미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도 거북한 무엇이 암종처럼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가 봅니다. 겉으로는 강한 싸움꾼인 척하지만, 옆에서 누군가 한 마디 훈수를 하고 조금만 역성을 들어주면 금시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약한 무신론자들인 겁니다.
이런 인터뷰 이후 많은 이들로 하여금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지성인 이어령을 한 인문학자로만 보았기때문에 비난을 하고 만것이다
이어령은 자식을 위한 사랑으로 신에게 고백을 한 과정이 있다 딸 이민아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어느날 실명위기가 닥쳐오고 미국에서
고칠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그 소식을 들은 이어령은 고백하기를 그토록 딸이 원했던 예수를 믿기를 바랬던 그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딸의 눈을 고쳐주신다면 내가 주님을 영접하겠노라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딸 이민아의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
오면서 이어령의 마음에 예수의 존재가 각인되고 그 후로 얼마 안있어 세례를 받게 된 것임을 안다면
아무리 인문학의 지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변절자로 퇴색시킬수 있느냐 말이다
내 자식을 위해 그동안 딸을 위해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많았기에 노년이 되고 힘이 없고 해줄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때
딸이 믿는 신을 향하여 드려지는 기도가 무엇이 문제이란 말인가?
자식을 둔 부모라면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아픈 자식을 낫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것이다 그 숭고한 마음을
고작 인문학으로 대체할수 있단 말인가? 어리석다고 볼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으로 불리웠던 고 이어령을 다시는 볼 수없고 그의 깊이를 알수 없는 그의 지식을 접할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