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나를 노예로 만들려 든다. 나를 조금씩 잠식한 뒤 군림하려 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럴듯한 말로 회유하기 시작한다. 그 말에 솔깃하여 귀를 열어 두면 점점 지배당하고 만다. 불안은 사람을 바쁘게 한다. 쉴 새 없이 일하는 것만이 불안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고 설득한다. 바쁘게 일을 하면 꽤나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잠시 불안에서 벗어난 것일 뿐, 쉼이 없는 자에겐 결국 더 큰 불안이 한 번에 밀려오게 된다. 불안은 바쁘게 사는 것으로 지워낼 수 없다. 바쁘게 행함으로만 살아지는 것도 아니다. 행하지 않음도 곁들여져야 균형이 이뤄진다. 그렇게 불안도 잠시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볼 때 사그라든다. 불안이 나를 삶의 여유는 모르고 노동만 할 줄 아는 노예로 만들어 버리려 할 때면 굽혀진 허리를 더욱 똑바로 펴야 한다. 그리고 긴장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은뒤 말해야 한다. 불안은 감히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단단한 마음도, 단단한 사람도 변한다. 지금보다 더 굳셌던 어릴적 나는, 한번 정한 것은 번복하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는게 옳은거라 믿었다. 그렇게 굳건한 마음을 지니면 사람이 더 단단하고 강인해 보일까 싶어서. 그런데 언제나 한결같을 거라고 믿었던 내 모습이 바뀌고 나서야 깨달았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금속에도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되어 녹는 것처럼, 세상에 그 아무리 단단하고, 크고, 굳센 것들이라도 결국 변하고 만다는 걸. 그게 뜨거운 불씨와 맞서 본 증거이고 내게 남는 삶의 흔적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어릴 적보다 덜 굳세다. 이게 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람은 모두 물렁물렁한데, 그걸 단단하게 굳혀 방패로 사용하는 방법밖에 모르고 산다. 그것을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고 착각했다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요즘 나는 무른 사람으로 산다. 무르게 살다가 견고한 방패가 필요할 때만 굳세진다. 한결같다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바람 같은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불안과 강박으로 잠을 자는것도, 숨을 쉬는것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다시 찾은 정신과에서 강박증과 우울증의 병을 진단받아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좋아질거라는 믿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필요할때마다 찾아보려 스크랩 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