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다. “보통의 부녀관계”가 그렇듯 아버지와 친하지는 않다.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고 부르니까(아빠는 아무래도 조금 어색하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부자지간이 아니더라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이곳에 쓰기는 조금 부끄러우나 그래도 몇 자 적어본다면, 내 아버지는 육남매의 장남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가난했던 형편 탓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공부를 할 만큼(아버지의 고향은 작은 어촌마을이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어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학까지 나오셨다. 9급 공무원으로 입직해 4급으로 퇴직하신 지금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건설회사에서 재건축 관련 일을 하신다. 그리고 이 글을 적는 바로 어제, 아버지의 새로운 자격증 시험 결과가 나왔다. 아버지는 들뜬 목소리로 나무의사가 되려고 한다면서 이것저것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하셨다. 칠순의 나이에도 꿈을 말할 수 있다니! 동태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고작 서른 셋 먹은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자리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낚싯배에 올라 그물을 털던 아버지의 세계와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세계, 공인중개사, 그리고 이제 나무의사(가 될) 아버지의 세계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적어 내려간 아니 에르노의 담담하고 평이한 문체는 아버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식의 온도와 같았다. “보통의 부녀관계”처럼 뜨뜻미지근한. 그러나 그 심심한 시선 속에는 분명 아버지에 대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이토록 꾹꾹 눌러 담긴 아버지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내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은 몹시 생경한 경험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이 순간들을 꼭 책을 읽으며 느끼길 바란다.
아버지가 나무의원을 열게 될 날을 기다린다. 자식 셋을 훌륭하게 키워 낸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수많은 나무들의 아버지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여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부디 활짝 열리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