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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진보
5.0
  • 조회 350
  • 작성일 2024-12-06
  • 작성자 라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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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셉스는 카리스마도 있었고 사업가적 안목도 있었고 야망도 있었다. 프랑스 권력층에 연줄도 있었고 때로는 이집트 당국의 지지도 받았다. 또한 그가 전에 거두었던 성공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을 매혹했다. 더 중요하게, 레셉스는 거대한 공공 인프라 투자와 기술 진보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득이 되리라는 19세기판 테크노-낙관주의를 설파했다. 이 비전이 프랑스 대중, 그리고 프랑스와 이집트의 의사결정자들이 그에게 동참하게 만들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이러한 비전의 역할이 없었다면 레셉스는 약 190킬로미터에 걸쳐 이집트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공사에 엄두를 내볼 만한 의지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기 시작했을 때도 그러한 의지를 가질 수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비전이 없으면 테크놀로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적 권력이 갖는 일반적인 특징은 테크놀로지의 비전과 관련해서 특히 핵심적이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지배력을 고양하는 방법에 대해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이들,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 견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옆으로 제쳐놓을 수 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립 서비스 수준의 언급이 나올 뿐이다. 비전이 과잉 확신으로 이어지면 이러한 문제는 더 증폭된다. 이제 그 비전의 경로를 방해하는 사람이나 다른 경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중요치 않거나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틀린 견해를 가졌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무시되고 짓뭉개져도 괜찮은 사람이 된다. 비전은 모든 것을 합리화한다.

테크놀로지 혁신과 변화는 늘 있었고, 무엇이 누구에 의해 달성되어야 하는지의 의사결정은 늘 권력을 쥔 사람들이 내렸다. 지난 1만 2000년 동안 농업 테크놀로지는 계속해서 발달했고 때로는 극적으로 발달했다. 생산성이 오르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이득을 얻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득이 폭넓은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것은 전혀 자동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폭넓게 공유된 이득”은 토지를 소유한 지배층과 종교 지배층이 자신의 비전을 강요하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가져다준 잉여를 모두 추출하기에는 충분히 강력하지 못할 때만 나타날 수 있었다.

순전한 자동화는 이와 다르다. 노동자가 산출에 기여하는 바를 증가시키지 않아서 추가적인 노동력을 고용해야 할 필요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동화는 소득 분배에 더 극명한 결과를 낳는다. 아주 크게 이득을 보는 승자(가령, 기계의 소유자)와 아주 많은 수의 패자(가령,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를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동화가 많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생산성 밴드왜건이 더 약하다.

더욱 고통스러운 사실은 유럽 식민지 대부분에서는 여건이 개선되기는커녕 상당히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인도 같은 나라는 영국의 직물이 밀려 들어오면서 탈산업화의 길로 심각하게 내몰렸다. 인도와 일부 아프리카 지역 등은 빠르게 성장하는 유럽 산업 영역의 맹렬한 식욕을 채우는 천연자원 공급지가 되었다. 미국 남부 같은 곳에서는 노예제의 형태로 최악의 억압적 노동이 한층 더 강화되었고, 원주민과 이민자에 대한 사악한 차별이 심화되었다. 이 모두가 진보의 이름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거대 기업이 빠르게 덩치를 불린 것은 굉장히 폭넓은 함의를 갖는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제 거대 기업들이 심지어 더 큰 시장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권력이 경쟁자의 혁신을 저해하고 자신의 경영자와 주주를 살찌우는 데 사용된다고 우려한다. 거대 독점 기업은 소비자에게도 종종 좋지 않다. 가격과 혁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거대 독점 기업은 생산성 밴드왜건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노동자들을 끌어오기 위한 경쟁이 줄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래도 부유한 주주들을 더 부유하게 만듦으로써 불평등을 꼭대기 쪽에서 강력하게 증폭시킨다. 때로는 거대 기업이 수익을 노동자들과 분배해서 노동자의 소득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지난 몇십 년간 벌어진 제도적 변화의 또 다른 측면이 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바로 노동자 권력의 쇠락이다.

인간을 밀어내고 막대하게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높여 노동 수요를 늘리고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얻는 이득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아주 많이 높일 때만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 바로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직까지는 AI가 “그저 그런 자동화”, 즉 생산성 이득이 그리 크지 않은 자동화만 아주 많이 가져왔기 때문이다.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를 막론하고, 역사를 해석할 때 우리는 결정론적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벌어진 일은 벌어졌어야만 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이는 정확한 해석이 아니다. 역사가 갈 수 있었을 경로는 아주 많다. 테크놀로지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AI의 세 번째 파도를 규정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접근 방식은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끊임없는 자동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에 의한 결과다.

이 모든 것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꼭 자동화에 쓰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AI 기술이 꼭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추세를 강화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테크 공동체가 기계 유용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꼭 기계 지능에 현혹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경로에 미리 예정된 것은 없고, 오늘날 지배층이 만들고 있는 이중 구조의 계층 사회와 관련된 어느 것도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불행히도, 온라인 민주주의는 주요 테크 기업이 가진 사업 모델 및 AI 환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온라인 민주주의는 중요한 의사결정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내리기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보는 기술 관료적 접근과 대척점에 있다. 천재들이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테크 회사에서의 분위기다. 그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접근에서 대중의 정치 담론은 독려되거나 보호되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이용하고 이득을 뽑아내야 하는 무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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