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작품답게 환상적인 분위기의 세계관이나 인물 간에 오가는 감정의 묘사가 생생하다.
"하루키는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리고 소설에 대해 ‘마음으로 쓰는 것’ ‘마음과 논리적인 의식의 간격을 메워나가는 것’ ‘논리만으로 구제할 수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밝혀왔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하루키는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마구잡이로 교차하는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서 소설에 사용된 기표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벽에 둘러싸인 도시는 현실인가 환상인가? 평행 세계의 사람들은 본체인가 그림자인가? 벽은 정지했는가 움직이는가? 꿈은 환상 세계인가 현실인가?.이 말장난처럼 보이는 물음은 이야기 속에 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한다.
1부에서부터 사용된 '비가 쏟아지는 바다' 메타포는 이러한 뒤엉킴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적절한 표현이다. 비가 쏟아지는 바다는 비에 의해서 조금씩 변하겠지만 그 변화를 무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비와 바다는 늘 순환하고,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펼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1부에서 명확하게 분리되던 그림자와 본체는 3부에 가서는 다시 합쳐지면서 그 구분이 무용해진다. 비와 바다가 만나는 것처럼 주인공은 그림자와 본체 모두가 자신임을 믿게 된 것이다.
작가 후기를 살펴보면 이 소재와 관련한 하루키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하루키는 '이동하는 형체'를 진실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이동은 바다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순환하지 않는 바다는 바다가 아닌 것 같이(그러나 적어도 바다의 일부나 한 측면이라고는 할 수 있으리라). 예컨대 삶의 역동성이란 진실을 외면하고 그 단면만 바라보고 살듯이 말이다.
이렇게 하루키가 그린 스케치를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다름 아닌 연민과 사랑이다.
하루키는 진실의 역동성이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2부는 시골의 한적한 도서관이 주 배경이 되어, 여태 진실에 대해 혼란을 겪은 주인공이 변화를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다. 예컨대 주인공은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중년 아저씨를 이해하고, 새로운 연인에게 마음을 열고, 서번트 증후군으로 보이는 소년을 진심으로 헤아리게 된다. 더불어 주인공에게 도움을 받은 인물들은 이로써 자신의 상실을 회복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후반부에 주인공은 결국 그로부터 변화한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에 이르게 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도달하는 곳은 휴머니즘의 경계 너머다. 하루키는 삶의 경계와 진실이 자신의 의지와 연대가 맞닿는 곳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하루키가 43년 동안 품고 있었던 깊은 사유이자 그의 새로운 뿌리가 될 시발점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하루키가 앞으로 써낼 작품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심은 연대의 씨앗으로부터 시작되리라 짐작해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6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