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시대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얼마나 될까. 역사는 조국과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무엇이든 팔아넘긴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소설의 시선은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름들을 향한다. 양반들이 이 나라를 일본에 넘겼다고 한탄하면서도 "가족을 지켜라. 자기 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라고 되뇌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역사의 소용돌이가 삶의 터전을 뒤흔들고 파괴해도, 옳은 것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을 간직한 채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사람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시대의 비극을 어떻게든 감내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쳐진 헌사.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윤여정과 이민호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며 세계를 달구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한번 뜨거운 주목을 받던 도중 판권 만료로 갑작스레 절판되었던 소설 <파친코>를 새로운 번역과 표지로 만난다. 현재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과 <파친코>에 이은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 마지막 소설 <아메리칸 학원>을 집필 중인 작가는 미국에서 왜 한국인 이야기를 쓰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내게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이들이다. 온갖 놀라운 상황들을 견디며 분투해왔기 때문이다."라는 대답과 함께 앞으로도 한국인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가고 싶다는 이민진 작가.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향할 곳이 기대된다. 19세기를 지나며 인류의 역사는 또 다른 질서와 가치위에 재구성 된다.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사라져서는 안되는 꼭 필요한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영상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며 그것이 좋은 이야기의 힘이구나 한다. 일본인의 멸시와 차별을 어린시절부터 받고 자란 조선인들의 삶에서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작은며 그것을 가지고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나 ? 라는 어리석은 물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안을 안겨준다. 모자수와 노아의 자식들 , 재일교포3세가 겪는 일본현실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인식하며 우리가 놓친 역사적 아픔이 우리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동포들에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 임을 알게 되어 너무 먹먹하고 아픈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