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조금 지적이고 싶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서 철학 입문서라는 책들을 3권 정도 겨우 읽어내었지만, 막상 머리 속에는 남은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아 좀 쉽고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소피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e-book 1,590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제법 분량이 많았는데(40대 중반에 노안이 찾아와 글씨 크기를 110%로 늘린 탓도 있지만),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잠자리에서 틈나는대로 읽어 약 3일만에 끝을 보았다. 그 내용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어떤 때는 두세번, 또 어떤 때는 대여섯번씩 읽어야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한 반복이 짜증스럽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후 벌어질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영접하는 전단계인 것만 같아 긴장감이 넘쳤다고나 할까(책을 실제로 읽어보기 전에는, 복잡한 철학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매우 단순화시켜 보면, 15세 소녀(엄밀히 말하면 '소녀들')가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요한 철학 이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철학 입문서 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한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누구라도 '내 자신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어떤 세계에 속한 것일까?' 등등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동시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SF 판타지 소설의 크나큰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스포'에 해당할 수 있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지식 전달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철학 입문서와 문학적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로서의 조화가 이토록 완벽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명성에 비추어 보면, 최초 출간된 때로부터 20년여 년간 이만한 철학 소설은 없었던 것 같다. 소피를 떠나보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나는 어제 인터넷을 통해 동명의 영화 DVD를 구입하였고, 오늘 설레는 마음으로 그것을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