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의외의 사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일이 현실로 드러날 줄은 알았지만,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예감 속에 오늘이나 내일은 없다. 오직 '언젠가'만 있을 뿐이다. 매일매일이 오늘이거나 혹은 내일인데.
아버지가 돌아 왔다.
아버지가 돌아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늘 오늘이나 내일은 아니라고 믿었다. 아버지의 귀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어나는 사건이 될 줄은 정녕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돌아왔다. 그렇게 나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점심시간이 지나서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시간에 집으로 오라니,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이 명료하게 떠올랐다.
역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 시간에 퇴근하는 일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연말연시는 우리 회사가 가장 한가한 계절이었다. 수입업체들한테 성탄절이 낀 앞뒤의 십여 일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책상을 정리하는 마음이 후두둑 뛰었다. 예기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 예기치 않게 그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 것은 오 년 전이었다. 손님처럼 돌아와서 며칠 묵다가 손님처럼 떠났다. 떠나는 아버지 얼굴을 나는 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어미니 혼자 벽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아침에 나갈 때는 아버지가 그렇게 혼자 벽을 보고 누워있었다. 벽을 보고 누울 수 있는 바로 그 아랫목 자리를 어머니한테 넘겨주고 아버지는 또 떠난 것이었다. 일 년 후에 돌아올지, 아니면 이 년 후에 돌아올지 어떤 언질도 남기지 않고.
하긴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버지에게 다시 만날 날이 언제인지 묻는 일처럼 부질없는 것이 있으랴. 아버지는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고, 언제라도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쯤에는 남아있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손님이란 불현듯 들이닥쳐야 진정한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