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의 내용이 본문을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금서라던지 읽어본 사람들이 말하는(소위 우상화하는) 부분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택한 책이었는데, 확실히 정치/외교학 전공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책임에는 분명해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고생물 학자가 되어서 단층의 한 면을 관찰하는 감각으로 읽어내려갔다.
특정한 시대의 정치/외교상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기의 퇴적층과는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점 또한 이런 감각을 느끼는데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책의 구성 또한 당시의 시대상과 현대의 정치/외교적 흐름과 차이점을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단절감을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단절감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 부분은 아무래도 읽으면서 섬뜩한 느낌까지 드는 마키아벨리의 통찰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부분들이 이 책을 권하는 사람들이 평하는 "한 번은 읽어볼 만 한 책"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차가울만큼 현실적인 정치에 대한 관점은 정치에 대한 나의 순진한 관념을 변화시켜주기에 충분했는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가 권력을 유지하는것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대목이 인상깊었다. 현대처럼 과거에 비해서 권력의 주체가 다원화 되어있는 상황에서도 이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이는데, 민주정의 원칙으로는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나, 그 정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정치를 택하는 경우가 많기에, 국민으로부터 나온 그 권리는 특정 개인(정치인)에게 모여들어 있는 것이 현실로 생각된다. 이렇게 권력이 모인 정치인들이 정치를 대하는 관점이 마키아벨리의 그것을 닮아있었다는 것을 체감할 때가 (슬프게도) 자주 있다.
정치의 존재 목적이 국가/사회의 발전에 있지 않다는 관점을 받아들이면, 정치의 목적이나 효과에 대해 내가 갖고있던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것 보다 더 느리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심지어는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과거에 많이 했었다면, 마키아벨리적 관점으로 바라보게된 이후에는, 결국 정치인들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기위한 일련의 과정들이고, 사회의 발전은 그에따른 부수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정치혐오와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현대의 국민들, 개개인들에게는 개인에게 부여한 권력을 철회거나 옮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정치의 목적을 다르게 바라보고 그 틀안에서 내가 원하는 미래사회를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주권자들이 각자의 정치를 하는 방법이 아닐까. 더욱 더 정치에 관심갖고 바라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