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고전에 대한 로망과 신뢰가 컸다. 뭐랄까? 기댈 수 있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고향 같은 존재로 늘 마음에 품었다. 이때 ‘고전에 답했다’ 라는 책 제목의 문구를 만나게 되었다. 마음에 ‘쏙’ 들어온 것이다. 속된 말로 ‘너 잘 만났다’ 인 셈이다. 망설일 필요 없이 단번에 읽기로 하였다.
이 책은 총 3부, 250여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나는 누구인가? 2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그런데 내 나이에는 글씨가 너무 작아서 조금 불만이다.
‘들어가며’에 이런 말 있었다. “고전은 모양이 없다. 내가 고전을 읽으면 고전이 내 모양으로 바뀐다. 그 고전은 세상과 싸울 어떤 무기보다 단단한 갑옷이 된다.” 무엇인지 나의 모자람을 지원해주는 것 같아 든든함이 느껴진다. 본문에 인상적인 문장을 다시 음미해보자.
- 직관은 울퉁불퉁하고, 개념은 매끄럽다. 직관은 각자 다른 개성, 나만의 독특한 생각들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것이다. 개념은 그 울퉁불퉁함을 망치로 쳐서 매끄럽게 만든 것이다. 개념 속에 산다는 건 남들에게 끌려다니며 사는 것이다. 자유롭지 않다. 진짜 나를 위한 것인가? 진짜 나는 어떤 직관을 가지고 있는가? 계속 질문하라. 하루를 살아도 자기 직관으로 인생을 느끼며 살다가 죽은 사람이 가장 오래 산 사람이다. 독자여! 당신의 2X2는 얼마인가? 계속 질문하라. 고전을 통해 죽어 있는 당신의 직관을 살려라.
- 자전거가 계속 움직여 앞으로 나아갈 때 안정적인 것처럼 인간 역시 계속 움직여야 안정적이다. 한자리에 머물러 안주하면 녹슬어 버리는 게 인간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안정은 움직임이다. 돈키호테는 책을 읽고 깨달았다.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사라지는 게 훨씬 아름다운 사실을.
- 내 모든 삶, 내 의식적인 삶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전에는 이런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자신이 마땅히 살아야 했던 삶을 살지 못했으며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려고 했던 눈에 띄지 않았던 충동, 그가 즉시 억눌렀던 그런 충동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전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일, 삶의 방식, 가족, 사회적 및 직업적 이해관계 역시 모두 거짓일 수도 있었다(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86쪽). 저자는 여기에서 ‘나’가 ‘남’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가치’는 ‘같이’ 사는 것이다.
- 내 인생에서 최고의 아이디어는 (중략) 편안히 걷던 중에 나왔다(생각에 관한 생각). 자기만의 속도로 고전을 읽어가라.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고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각의 파동으로 당신의 가슴을 뚫어라.
저자는 주로 고전(성경, 노인과 바다, 도덕경, 에밀, 칼융 레드북, 데미안,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인간의 대지, 햄릿, 메밀꽃 필 무렵 등)에서 발췌한 문구를 자신의 일상사와 대입, 연결 시켜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와 얘깃거리를 예시하면서 줄거리를 리드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