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남을 위해서 살라는 말이 아니라, 내 삶을 완성하기 위해서 남을 위해 살라는 말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 외 다른 존재에게 이롭기 위해 창조됐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이 생기고 언어를 발명하면서 오로지 내 욕심, 내 돈, 명예, 행복 만을 위해 살도록 세뇌당했다. 누구에게나 남을 돕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맹자에는 유자입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물가에 놀던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면 누구나 손을 뻗어 아이를 도우려 하는 마음을 갖는다. 돈을 벌 걱정보다는 일단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하자. 그 다음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루소는 에밀에서 "씩씩하게 자란 아이는 불평도 적다. 그 아이는 스스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므로 타인의 손길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는 것처럼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말은 쉽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내 아이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율성과 창의력을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하지만 모든 것에 관여하는 세간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내 아이의 안전 앞에서는 불안감이 더욱 앞선다. 불안감, 포모에 대한 안타까움, 책임감 등이 나를 지배한다.
남에게 충고하는 일은 쉬운 일이며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는 까닭은 자신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을 통해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 불평도 마찬가지이다. 불평은 남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나온다. 타인을 거울 삼아 나를 마주한다. 타인보다는 나의 내면에 집중하자. 녹슬어 사라지기 보다는 닳고 닳아서 소멸하겠다. 사람의 인생은 고통과 행복이 꼬여서 만들어진 새끼줄이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서로 꼬여서 튼튼한 줄을 만든다. 행복만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은 한 줄의 실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다. 풍요는 만족으로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결핍이 만족을 낳는다. 결핍은 의지력이다. 눈을 부릅뜨고 뼈만 앙상하게 남을지라도 마지막까지 한 걸음 앞으로 내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