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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사재인식-대한민국건국과제헌국회(대한민국역사와미래총서2)
5.0
  • 조회 374
  • 작성일 2024-10-23
  • 작성자 황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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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일제치하에서 해방되는 순간 공산주의 와 자유민주주의의 갈림길에서 대 혼란의 시간을 맞게 되었다.
이때 농지개혁만이 공산주의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고 헌법학자 유진오는 판단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인구 계층인 농업인들에게 토지를 적정히 분배하여 자기 소유토지에서 농사를 짓도록 하는 농지개혁을 제정하여 지주들의 중심인 한국민주당의 지도자인 김성수를 설득하여 공산당이 주장하는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농지 국유화를 추진할 전 단계의 선전공세임을 지적하여 그의 동의를 얻게 되었다.
그 동의가 없었다면 사유재산 침해라고 국회에서 거론하기 조차 어려웠을 것이고 뒤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했으니 우리나라의 농지개혁은 오늘날 필리핀이나 브라질처럼 손도 못될뻔 하였다.

1945년말 총경지면적의 35%에 지나지 않았던 자작지의 비중은 농지개혁 실시 1951년말에 96%로 급증했다. 일본의 경우 농지개혁 실시후 자작지율은 한국보다 낮은 90%였다. 동남아나 중남미에서는 지주들의 격심한 반발때문에 모두 실패한 개혁이 한국에서만 성공하였고, 결국 농지개혁의 성공이 197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이다.

농지개혁이 성공한 이유:
1) 미국의 대한정책의 핵심에 농지개혁이 포함되었고, 이것을 한국이 공산 침략에 맞설 대안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미군정시기에 귀속농지를 방매하여 농지개혁의 흐름을 불가역적으로 만들었다는 점
2) 이승만의 정치전략으로 한민당으로 대표되는 지주세력을 견제하면서 농민들을 자기의 지지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3) 농민층의 강력한 요구로 식민지시기 지주들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수탈당했던 농민들은 해방이 되자 식민지 지주제철폐와 농지개혁의 실시를 강력 요구
4) 북한토지개혁의 영향으로 북한은 46년 3월 손련군정의 지시로 한달만에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내세우는 토지개혁을 단행함으로 정부가 토지개혁을 단행하지 않고는 남한 농민들의 마음이 북한으로 쏠릴 위험성이 존재.

등 외에도 농지소유의 상한을 3정보로 설정하고 소작, 임대차, 위탁경영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식민지하에서와 같은 지주제가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됨.

끝으로 한국의 대지주들은 일본유학을 통해 신학문을 터득했기 때문에 독립된 한국이 농업을 넘어서 다른 산업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결국 한국은 농지개혁을 통해 세계 최고의 토지소유 균등성을 실현하면서 '자작농의 나라'로 변신하고 이것이 밑바탕 되어 '한강의기적'을 이루어 G20의 반열에 오르는 역사를 일구어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주권을 당이나 수령이 아닌 국민이 갖는 국가에서 태어난것이 큰 축복임을 실감한다. 앞으로 주사파를 청소하면서 이길을 지키고 나아갈때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선진 통일시대는 반드시 열릴것이다.
이책을 통해서 왜곡된 건국사를 다시 회복하는 뜻깊은 시간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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