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4년에 나온 밀란쿤데라의 대표작이다. 참존가는 이야기가 주가 되는 소설은 아니다. 밀란이 설정한 이야기 속에서 설정된 캐릭터들이 저절로 이야기를끌고 나아가면, 거기에 밀란이 구경꾼으로서 그 상황과 캐릭터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소설이다. 참존가는 이야기 자체의 힘보다 상황 속 캐릭터들의 행태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유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전격 캐릭터 성격 분석 소설인 것이다.밀란은 참존가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결국 삶이다. 필자는 단정해버린다. 그리고 의미야 말로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무의미도 의미다. 가장 큰 소음은 적막인 것처럼 밀란에게는 가장 큰 의미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의 존재와 삶. 밀란 쿤데라를 실존주의로 가두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전후 시대를 벗어날 수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평가를 해본다.
전쟁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허무주의를 안겨주었던 시대에 누구나 던졌던 질문, 바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의미를 두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유롭게 사는 게 맞는가.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에 의미를 붙인다면 숭고한 죽음은 무엇이며, 개죽음은 또 무엇인가? 무엇으로 우리의 삶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는가?
작중 인물인 토마시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로운 삶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여인 테레자만을 위한 무거운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밀란이 소개하는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에서 우리는 가장 숭고한 죽음을 보게 된다. 스탈린의 아들 중 하나가 독일군 포로로 잡힌다. 그는 변소에서 큰 일을 볼 때 늘 정조준을 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스탈린의 아들이라는 근엄성은 똥으로 인해 굴욕감으로 변한다. 스탈린 아들은 결국 자살한다. 똥 때문에. 그리고 밀란은 스탈린 아들의 죽음을 가리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다 생을 마감한 가장 숭고한 죽음으로 여긴다.
밀란은 말한다.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군인들이야 말로 그냥 개죽음 아니냐고. 허황된거짓말에 속아 전쟁터에서 죽는 것보다, 똥으로 인해 무너진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뼈저린 투쟁으로 맞이한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숭고함이라고. 전쟁은 인간의 허무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다. 무겁다고 생각됐지만 역사가 지나간순간부터 죽음은 헛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똥은? 똥은 실재다. 실재적 똥은 인간의 한 일부이다. 우리는 매일 먹고싼다. 인간은 안 싼 척할 뿐이다. 안 싼 척하는 것은 신을 거부하는 것인가? 혹은 똥을 싸게 만드는 것은 신의 실수인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똥을 싸고, 스탈린 아들은 엄연한 그 사실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다.
스탈린 아들의 똥에 대한 존엄성이 숭고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의 죽음 자체는?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의미가 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 토마시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또 한 명의 주인공 프란츠의 죽음은 또 어떠했는가? 자신이 무겁다고 생각했던 베트남 전쟁 반대 가두시위에 참여하고 뻑치기한테 맞아 죽는다. 어이없는 죽음이다. 무겁게 살려고 했다가도, 혹은 가볍게 살려고 하는 순간에, 주인공들은 죽어 나갔다. 허무하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또 허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