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라는 착각.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이 제목과 표지글에서 나는 이미 이 책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제목만큼 매력적이지 않아 여러번 접었다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이 책에서 '난 무엇이 옳은지 알아. 난 이성적이고 똑똑하니까'라는 말로 대변되는 공상적 박애주의자와 '난 무엇이 옳은지 알아. 그냥 감이 오니까'라는 말로 대변되는 포퓰리즘 신봉자 사이에 형성된 전선은 더 팽팽해지고 있다 말한다. 그리고 플로리안 일리스는 이런 비참함을 '토론이나 의견 교환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늘 280자(트위터 최대 글자 수)로 자신이 옳다는 이야기만 할 뿐' 상황은 고착된 것처럼 보인다. 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확신을 의문시하고 캐묻는 대신 다른 확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제 정신이 아니라며 폄하해버린다. 우리는 확신을 '정상적인 것'과 '제정신이 아닌 것', 합리와 비합리, 건강한 것과 병든 것으로 양분한다. 우리 모두가 이런 구분을 한다고 말한다. 이런 구분이 직관적으로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은 복잡성을 줄여주며, 구조를 부여하고 이렇게 구분하면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세상에서 방향을 잡는 것이 더 수월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 어떤 근거와 정당성으로 이처럼 교집합이 없는 이분법적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확신을 단순히 '정상'과 '비정상' 같은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이런 이분법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존하자. 다원화된 사회에서 평화롭게 서로 돕고, 나와 다른 관점을 무조건 밀어내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자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정신 나갔다고 욕하는 이분법적 분류는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밝히고 내부의 결속력을 높여 통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긴 쉬우나 내가 가진 주장이 반박 당하는 걸 받아들이긴 어려워한다. 내 주장을 나와 동일시하면서 내가 가진 주장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업무를 하면서 타부점과의 의견조율시 정말 많이 느끼는 점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인간은 언제든지 정상 범주에 속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비정상 범위에 속할수 있음을 인지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