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싸움에 거의 진적이 없는 그리스신화의 거인 씨름꾼 안타이오스와 같다. 대지에 몸이 닿으면 그의 정기는 저절로 충전이 되어 힘이 솟는다 그러나 원시인 같은 순진함 문명에 때묻지 않은 시력과 청력을 가진 조르바가 처음부터 속세와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며 서유럽의 간악한 지혜에 물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명과 전쟁 그리고 인간의 모든 악에 부딪치고 닳아 떨어지면서 더욱 순수해져 갔던 것이다. 카찬차키스는 이런 조르바 옆에 서유럽 지식인인 "나"를 세워 두었다. 대지에 발을 딛고 살며 조각을 다듬는데 거치적거린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조르바와는 달리 현대의 지식과 이상으로 가득찬 "나'는 본능이 마비돤 현대인의 불구자 같은 모습을 대조적으로 드러낸다. 이책에 등장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의 표상적 자아의 모습이며, 속 시원한 인생관을 토해 내며 행동하는 힘을 보여주는 조르바는 그의 관념적 자아의 모습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신앙과 조르바의 대결로 나타난 신앙의 변증법이기도 하다. 주인공에게 악기를 주고 떠난 조르바가 카잔차키스의 참된 신은 아니었다. 카잔차키스에게 신이란 행복이나 영광, 안락함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수치와 곤욕, 눈물 속에서 창조되는 초인간적이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나오는 구절중 "언제쯤 나는 모든 것을 뿌리치고 친구도 없이 기쁨도 없이 슬픔도 없이, 모든 것은 오직 꿈이라는 성스런 확신 하나만으로 고요 속에서 쉴 수 있을까? 언제 나는 넝마를 걸친 채 아무런 욕망도 없이 만족하여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 나는 나의 몸은 다만 병이요, 죄악이요, 늙음이요, 죽음임을 깨닫고 자유로이 행복하게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조르바를 믿어요. 왜냐하면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존재이고 내가 아는 하나밖에 없는 놈이니까. 그 밖의 모든 것은 허깨비지요. 그리고 이런 구절, 공자가 말했지 "많은 사람은 행복을 인간보다 높은 데서 찾거나 그 아래서 찿는다. 그러나 행복은 인간과 같은 높이에 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것이겠지 ..
순수하며 본능에 충실하며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하며 행동하고 인간의 근본을 지키며 생각하고 살아가는 조르바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