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밤이면 죽어가는 것들의 비명이 들렸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비명인가 싶었지만, 사람이 아닌 것들의 비명도 있었다. 거꾸로 살아 있는 우리는 말을 잃었다. 표정을 잃고 감정을 잃었다. 처음으로 공습 사이렌이 울려 방공호로 내려갔을 때부터 우리는 그랬다. 거기 방공호에는 어떤 말도, 표정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침묵과 무표정뿐이었다. 나는 방공호 밖에서 죽어가는 것들과 함께 우리의 말과 표정과 감정이 산산조각나 골목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상상했다. 바람의 장례식처럼.
- 되풀이되는 전쟁을 토대로 한 소설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요즘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 중 일부에 대해 갸우뚱 하는 중이다. 알렉산더니 징기스칸이니 나폴레옹이니 하는 정복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전쟁을 통한 통치 영역의 확대가 어떻게 위인의 조건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이를 통해 문명의 발전이 빨라졌다는 등의 소리도 마땅찮다. 전쟁을 일으킨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전쟁만은 좋은 전쟁이고 옳은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ㅇ엄마가 죽은 뒤, 그는 마치 바람 부는 빈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라도 된 듯 그해 2월과 3월, 그리고 4월로 덧없이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겨울의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불과 한 달 전의 비극조차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파리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초록으로 물들이던 5월...”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한국 단편 소설들이 갖는 가학적 글자수 제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원하는 만큼 쓰고, 끝내야 할 때가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이 쿨함에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책장을 넘기는 손은 가벼웠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에 등장할 이야기를 기다렸다.
이 소설들은 낭독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제주문화재단의 초청으로 가파도의 레지던스에 머물고 있었던 때라고 한다. 낭독회는 체류 작가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해가 저물면 가파도의 제주 시민들이 하나씩 서점을 찾아 들어온다. 중년 여성들이 많았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인문학서를 읽는 독서 모임의 회원들이라고 했다. 캄캄한 밤 위로 희미한 조명을 켠 뒤 평생 보고 살 일 없었던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는다. 한 사람은 소설을 읽고, 한 사람은 침묵으로 대답한다.
푸릇한 책표지와는 다르게 읽고나니 가슴이 먹먹했던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