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거벗은 한국사 – 인물편 >
과거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다룬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스토리텔링식) 중 총 2부 8장으로 이루어진 역사적인 인물 속 숨겨진 진실들을 접하는 벌거벗은 한국사(인물편).
[1부] 나라의 운명을 뒤흔든 사람들
1장. 이성계는 왜 어명을 어기고 말머리를 돌렸나, 이성계라고 하면 조선의 첫 번째 왕이라는 사실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그는 고려를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왜구, 여진족, 원나라 군대를 무찌른 고려 최고의 장군 그야말로 고려의 영웅이였다. 이런 이성계와 고려를 바로 잡으려는 충신들과 그들을 가로막은 기득권 세력 권문세족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최영, 정몽주, 신진사대부와의 교류 그리고 고려를 뒤집을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을 통해 국가의 흥망성쇠를 고민한 이성계는 고려 군사와 백성들의 애민 정신의 생각으로 기우려져가는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기까지는 새로운 정치 세력과 백성들의 민심에 따른 행보였다.
2장. 궁예는 왜 왕건의 마음을 읽지 못했는가, 통일신라 말기 왕실과 지방 호적들과의 혼란한 정국 시기 후삼국 시대 신흥 장군 궁예가 운명적 상대 해상호적 왕건을 만나 세운 나라 태봉(후고구려). 그리고 완산주 지방 호적 견훤의 후백제, 명맥만 남은 신라 이들 중 가장 넓고 강력한 세력의 후고구려 궁예는 국호를 마진으로 개명 후 폭주를 시작하게 된다. 궁예 본인을 미륵불이라 칭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드려다 보는 관심법의 시행. 공포 정신을 함으로써 궁예와 왕건 사이의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궁예는 자신의 가족까지 죽임으로써 궁예를 따르던 민심은 점점 전쟁 영웅 왕건에게로 이어졌으나, 궁예의 폭정은 계속되어 새로운 왕족 국가 탄생을 알리게 된다. 고려 왕건의 시대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미륵 궁예의 폭정 또한 왜곡된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을지 모르나, 새로운 국가 탄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백성들의 민심과 왕건의 야망을 궁예는 읽지 못한 것은 아닌지 눈을 감고 조용히 사색해 본다.
4장. 의자왕은 어쩌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되었나. 700년 역사를 가진 백제가 660년 7월경, 멸망하던 날이라고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때어 놓고 얘기할 수 없는 단어일 것이나, 승자 국가가 패망한 국가의 치적을 높이기 위한 후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장왕의 등장과 함께 신라 40여 개의 성을 함락한 능력 있는 정복 군주인 의자왕은 백제 왕실과 신라 왕실 사이 대대로 이어진 원한 관계에 따라 막강한 고구려의 견제를 도모함과 동시에 외교를 통한 국가간 전략에 따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신라를 전력을 외면하였고, 초심과 달리 정치적 이해관계와 향락에 빠질 무렵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 전술을 소홀이 하게 된다. 마지막 운명을 건 황산벌 전투에서 크게 패함과 동시에 700년 백제 왕조의 멸망을 초래하게 된다. 의자왕이 초심을 잃지 않고 주변국가에 대한 전략적 외교 활동을 잘 하였다면 어쩌면 삼국시대 운명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반문해 본다.
4장. 이방원은 왜 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쳤나.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위치한 광통교가 있다. 놀랍게도 이 돌은 조선 왕가의 무덤을 장식했던 병풍석으로 밝혀졌다. 태종 이방원에 의해 만들어진 광통교는 드라마, 영화 등으로 우리한테 익숙한 왕 태종 이방원이다. 그의 아버지(이성계)와 어머니(둘째부인 신덕왕후) 그리고 형제들 간 왕권 다툼에 따른 권력 다툼과 배신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초기에 나타나는 정치적 정적과 조력자들과의 세력 다툼 등을 통해 정치적 뜻을 나누고 신뢰를 쌓아온 어머니 신덕왕후에 대한 배신감은 상당했으니라 생각해 보면서 골육상쟁을 통해 이루어진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냉혹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2부]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들
1장. 연산군은 왜 미치광이가 되었나. 조선 27명의 왕 중 2명만이 ‘군’ 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선 최초로 신하들에 의해 폐위된 왕 연산군 그는 조선 최악의 폭군, 패륜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왕권 강화 목적으로 일어난 조선 최초의 사화. 반대하는 신하들의 목을 친 무오사화를 시작으로 향락과 사치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왕. 그런 권력자 뒤 희대의 간신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에 의해 벌어진 또 하나의 재앙인 갑자사화 그리고 극악무도한 공포정치와 ‘흥청망청’ 향락의 장이 된 궁궐. 숨죽여 지내던 신하들에 의해 끌어내린 폭군의 쓸쓸한 최후. 기록에 따르면 반정 당시 궁에 상황을 눈치챈 장수와 시종, 내시들은 왕을 버리고 도망가기까지 했다라고 전해지니 그의 폭정이 어떠했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의 기록일 것이다.
2장. 사도세자는 왜 뒤주에 같혀 죽어야 했나. 조선 21대 왕 영조 그는 탕평책(영조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도 모두 감싸고 고루 등용)을 실시한 왕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비천한 신분의 무수리 출신 이였고, 이복형이자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치명적인 콤플렉스를 지닌 왕 이었다. 그런 영조에게 늦둥이 귀한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사도세자였다. 영조는 늦은 나이에 얻은 사도세자에게 너무 이른 나이부터 조기 교육을 통해 왕 세자 수업을 받게 하였으나, 공부에 뜻이 없었던 사도세자와 아버지(영조)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그 갈등의 무게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애정결핍에 시달린 세도세자는 정신병을 앓다 점점 미치광이가 되고 만다, 한편, 영조는 아들이 미울수록 세손이였던 정조에게 마음을 주면서 다음 왕위 계승을 위해 아들 사도를 어쩔 수 없이 죽임으로써 정권을 유지하였다. 왕조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해야 하는 아버지 영조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돌이켜 생각해 본다.
3장. 세종대왕은 어쩌다 며느리 넷을 쫓아냈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위인 중 1위는 단연코 세종대왕일 것이다. 조선의 성군이 아닌 시아버지 세종은 어떤 사람일까? 완벽에 가까운 성군 세종대왕도 자식을 위하고 아빠 바보가 되는 마음은 지금의 여느 시아버지와 똑같을 것이나, 첫째 아들(문종)의 배우자인 휘빈 김씨는 비술을 쓴 며느리로, 술과 동성애 스캔들의 순빈 봉씨를 포함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처 남씨,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처 송씨도 병이 있다는 이유로 이혼을 시킨다. 일반 양반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왕실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였으나, 어버지 세종 또한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이다. 조정의 대소사는 물론 모범적인 왕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세종의 고뇌를 알고나니 세종대왕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을 통해 위대한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것 또한 역사의 매력일 것이다.
4장. 어우동은 정말 죽을죄를 지었나. 경국대전을 완성한 조선 9대왕 성종시절 조선 최고의 팜므파탈(요부)로 알려진 어우동 사실 그녀는 기생이 아닌 박씨 집안 양반가 딸로 태어나 왕가의 종친 며느리였다. 하지만 이런 어우동에게 원치 않은 이혼을 함으로써 일부종사에서 벗어나 자유연애를 선택하게 된다. 조선시대 이혼한 여인이 경제적 사정을 살펴보면, 남편 없이 살 수 있는 시절이 아니였고, 자유연애 또한 놀라운 행위였기에 경국대전을 편찬한 성종과 위정자들이 여성들의 절개와 맹목적인 남자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삼아 문제적 여성 어우동을 반면교사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스캔들 메이커인 어우동을 지금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죽을죄까지는 아닌 것이다. 어우동과 사통한 남자들은 죽을죄에서 자유로운지 반문해 보면서 조선시대 역사와 풍습에 아이러니한 매력을 느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