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건국된 기원전 2333년부터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결과인 6.15 남북 공동 선언문이 발표된 2000년까지, 반만년 역사가 담겨있다. 한반도에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등장한 건 청동기시대로 고조선은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내세웠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고조선은 우리끼리 잘 살자고 세운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세운 나라이다. 이렇게 이타적인 마음으로 세운 나라가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라니, 참으로 멋진 일이다.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눴으며, "소경"은 작은 경주를 말한다. 경주가 동남쪽에 치우쳐 있으니 이전 고구려나 백제 영역을 통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섯 개의 작은 경주를 전국 곳곳에 설치했다. 신문왕은 왕권을 과시하면서 귀족들의 힘을 뺏고 정치와 경제체제를 마련했다. 덕분에 통일신라는 빠르게 안정을 찾고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고려 시대는 중세로 분류된다. 고대사회에는 신분제도로 실력을 쌓아도 정해진 계층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고려에도 신분제가 존재했지만,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있어야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과거제"이다. 국가에서 주도하는 시험에 응시해 실력을 인정받으면 관직을 얻을 수 있었다. 조선의 새로운 수도 계획은 정도전의 몫이었다. 종로 대로와 서울의 사대문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또한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다. 왕이 부족해도 훌륭한 재상이 있으면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힘만 앞세워 정변을 일으킨 고려 무신들과 달랐다. 무신정권 100년, 조선 500년은 이와 같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대한 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결국 국권을 상실했다. 이를 '경술국치'라고 부른다.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뜻이다. 국권 상실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권리를 빼앗긴 황제 고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백성들은 달랐다. 침몰해가는 나라를 어떻게든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개화기의 역사이다. 남북에 정부가 들어선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당황한 대한민국 정부는 부산을 임시수도로 정하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16개국이 참여한 유엔군이 남한에 파견되었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3년간 이어진 전쟁을 멈추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가 필요한 첫 번째 교양으로 손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알게 되면 현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을 보는 눈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빛바랜 옛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지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