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면서, 이제 사람들은 우리 뇌가 "가소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웬만큼 알고 있는 듯하다.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학습과 환경 등의 영향을 받아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가소성"은 뇌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가소성"이라는 단어에는, 틀이 한 번 완성되면 그 틀에 모양이 고정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의미는 우리 뇌가 끝없이 변하지 못하고, 한 번 어떤 모양과 방식으로 고정되면 더 이상의 변화가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끝없이" 변한다. 그래서 저자는 뇌의 특징을 보다 잘 설명하는 새로운 용어의 도입을 요구한다. 그게 바로 "생후배선"(LIVEWIRED)다. 이 단어는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의 원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의 뇌가 얼마나 극적으로, 한계없이 변할 수 있는지를 최신 뇌과학 연구 결과를 통해 설명해준다. 이 책에 묘사되는 뇌의 변화 가능성을 쫓아 가다보면,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1.4킬로그램의 회백색 물질에 존경심을 품게 된다. 또한 이런 물질을 품고 살아가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경이감이 생긴다.
유전자는 많은 것을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종종 유전자를 뛰어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건 바로 머릿속의 뇌 덕분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지닌 인간의 뇌는 처한 환경에 따라서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한다. 뇌의 생후배선은 유전자로 인해 인간의 운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뻔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유전자로 인해서 신체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신체의 장애를 뛰어 넘어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다. 뇌는 감각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뇌는 모든 자극을 전자신호로 받아들인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나 귀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뇌의 입장에서는 모두 똑같은 전자신호다. 이런 특성때문에 우리는 눈 없이도 볼 수 있고, 귀 없이도 들을 수 있게 된다.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카메라로 수신되는 정보를 청력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가 있다. 시각장애인이 이 장치를 활용할 경우, 정보를 가리지 않는 뇌는 시각이 변환된 청각 신호를 나름대로 열심히 해석하기 시작한다. 일단 정보가 입력되면 뇌는 어떻게든 그 정보를 해석할 방법을 찾아낸다. 그게 인간의 뇌가 가진 아주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뇌의 뛰어난 해석 능력 덕분에, 시각 장애인은 눈 앞의 광경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공상과학 속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이미 충분히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이다.
인간의 뇌는 890억 개의 뉴런들이 펼치는 조용한 전쟁터이다. 그 전쟁터에는 총소리도, 혈투도 없지만, 항상 아주 조용한 전쟁들이 있다. 뇌의 영역은 유한하다. 이 유한한 영역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뉴런과 피질은 항상 영역을 빼앗아 올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어떤 피질에 들어오는 자극이 신체 손상 등으로 인해서 줄어들게 되면, 근처에 있던 피질이 냉큼 옆 자리까지 점령해버린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은 보통 청각이 뛰어나다. 더이상 시각 정보가 입력되지 않으면서, 시각을 담당하고 있던 시각피질이 근처에 있던 청각피질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피질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을수록, 그 감각이 더욱 발달하게 된다.
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를, 뇌의 영역을 두고 벌이는 조용한 영역 전쟁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도 흥미로웠다. 인간의 뇌는 자극이 1~2초만 차단되어도 변한다. 뇌가 변하는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빠르다. 뇌가 아주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데 대단한 이점이 된다. 빠르게 변하는 뇌를 두고 문학도는 낭만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너의 이름을 들은 순간, 혹은 너를 만난 순간, 내 인생은 영영 달라졌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 문장은 그저 한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에 6~8시간 잠을 자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시각 정보는 차단된다. 30초미만의 자극 차단으로도 영영 변하는 게 우리의 뇌인데, 6~8시간 동안 시야가 차단되면 볼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손상될 수도 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편할까?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꿈을 통해서 생생하게 앞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해석한다. 충분히 일리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