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엔 제목 그대로 총 30개의 도시가 실려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봤던 도시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던 도시들도 있다.
무엇보다 역사의 흐름대로 읽어가야 이해가되는 내용들이 아니기에 내가 가보고 싶은 곳, 내가 알고 싶었던 도시를 선택해 읽어 나가다 보면 하루 한도시는 넘 아쉽다!
세계사는 도시 문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세계 주요 도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모습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는 것은 세계사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것!
여행을 갔던 곳도 있고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었기에 더 흥미있게 읽었던 책.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중 기억에 남는 도시 2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무역으로 지중해를 석권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의 대표적 관광지로 무역으로 우뚝섰던 도시국가다.
대륙지역과 11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다리로 이어져있으며 수상택시나 페리의 이동수단이 발달되어 있다.
과거엔 본토에 비해 농경에 적합한 토지도 부족했기에 실제 정착하여 살았던 인구는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후 게르만계랑고바르드족으로부터 도망친 베네티어를 사용하는 베네트인이 집락을 형성했고, '베네트인의 토지'라는 라틴어에서 '베네치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주력산업은 제염업, 하천을 위한 교역이었고 바다로의 진출도 교역망 확대가 목적이었다하니 과연 무역도시답다,
베네치아는 4차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더욱 번영했다고 한다. 십자군 원정에 필요한 물자수송을 담당하고 지속적인 상업 관련 특권을 독점했던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베네치아의 운하가 신분 권력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운하는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고 운수 외에 도시의 방어에도 이용을 하였지만, 퇴적물이 쌓인다는 기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에 '현인회'라는 수리기술자 집단에 의존했고, 그들은 해양 정보가 자세히 담긴 지도를 보며 공사를 했는데 이것이 군사기밀이었다고 한다.
군사기밀을 자연스레 손에 쥐게 되고, 그에 따라 점차 배타적인 조직이 되며 세습 신분이 되었다는데 권력이란 무엇일지...참 씁슬하기도 했다.
베네치아는 상업국가로서 쇠퇴했지만, 문화는 르네상스 시기와 맞물리며 더욱 융성했다
동서 문화가 교류하는 국제 무역도시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곤돌라의 선체가 검은색인건 베네치아의 경제력 저하를 보여주는것이라고 한다.
사치를 방지할 목적으로 법령을 발표하여 지금까지 곤돌라의 선체는 검은색이라는데 쇠퇴하지 않았더라면 색색깔의 화려한 곤돌라를 볼 수 있었을까
번성하고 쇠퇴하고 끝없는 변화였지만 베네치아는 결국 관광산업을 적극 개발하여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잡았고, 모든이들의 로망인 도시가 되었다.
매력적인 도시. 검은색 곤돌로라를 타고 운하를 따라 베네치아를 관광해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생긴다.
세계유산과 일상이 혼재하는 오래된 항구도시 믈라카
다채롭고 아름다운 말레이시아 믈라카.
한때 말레이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던 믈라카왕국의 왕도이자 동서무역의 중계기지로 번창했었지만, 이후 지배자가 잇따라 바뀌며
수도의 기능을 상실한 도시.
하지만 도시가 가진 특색과 아름다움은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도시 믈라카.
믈라카라는 이름이 가진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왕자가 사냥을 갔다가 나무에서 쉬고 있었단다.
그때 사냥개에 쫒긴 사슴이 도망쳐 왔고, 궁지에 몰린 사슴이 놀랍게도 사냥개를 강물로 차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겁이 많은 사슴이 사냥개와 맞서 싸우는 모습에 감명받은 왕자는 이 장소를 수도로 결정하고 자신이 쉬고 있던 나무의 이름을 따 믈라카라고 명했다 한다.
오래전부터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믈라카해협
그래서일까? 현재에도 세계에서 배의 왕래가 가장 많은 해역 중 하나라고 한다.
믈라카는 교역으로 막대한 이익도 얻었고 계절풍의 영향으로 순풍을 기다려야만 했던 배들의 정박기간에 따른 수입으로도 번성했다고 한다.
지리적인 이점이 대단했던 도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1511년 포르투갈 함대가 나타나자 왕은 믈라카를 버리고 남쪽 조호르로 천도해서 조호르왕국을 세웠단다.
포르투갈인들은 믈라카를 점령했고 믈라카를 거점으로 아시아 각지로 진출했다. 하지만 포르투갈령 믈라카 역사도 100년만에 끝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포르투갈 지배이후 네덜란드 영국이 믈라카를 식민지로 삼았고 일본에게까지 점령당하는 등 400년이상 여러국가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믈라카에는 동서교역과 오랜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남아 있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고 한다.
포르투갈이 건축한 산티아고 요새와 포르투갈 양식의 건축물
네덜란드 건축양식의 빨간 건물과 풍차, 그리고 꽃들
중국풍 불교사원과 야시장 가게들이 죽 늘어선 풍경
믈라카 왕국 시대에 왕의 이슬람교 개종으로 인해 이슬람교 모스크도 있다고 하니
믈라카가 가진 특색들이 얼마나 다양할지 더욱 궁금해진다.
그래서 2008년 동서교역과 문화교류의 역사가 담긴 독특한 건축과 문화도시 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믈라카 해협의 역사도시, 믈라카와 조지타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믈라카는 여러 국가의 식민지 지배로 다국적 혼혈문화가 생성되었고, 그 결과 다채롭고 독특한 국제도시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믈라카라는 이름이 참 이뻐서 언젠가 꼭 가보고자 했던 도시였다.
그래서 가보진 않았지만 수집했던 믈라카 자석.
믈라카가 수많은 나라의 식민지배를 받아서 지금 다채로운 모습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 가진 슬픔과 아픔이 그대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