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에 인접한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가면 바사호 박물관이 있다. 바사란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2세가 17세기 초 유럽에서 최대최강을 목표로 건조를 명한 군함의 이름이다. 배를 만들기 위해 천 그루가 넘는 떡갈나무가 벌채됐고 400명 이상의 직공들이 2년여 동안 작업했다고 한다. 바사호는 전장 70미터에 64문의 대형대포를 갖췄고 선수와 선미를 호화로운 장식으로 치장한 현란하고 호화로운 배임
구스타프 2세는 1611년 17세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네덜란드 군사기술을 도입해 폴란드 신성로마제국과 싸웠고 마침내 발트해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스웨덴을 북유럽의 대국으로 성장시킨 영웅이다.
그 국왕이 국내외 조선기술을 결집해 국왕의 위신을 체현하는 거대군함의 건조를 명했음. 1628년 배의 건조가 완성되었고 스톡홀름 시민 수만명이 환호하는 가운데 남서쪽으로 불어오는 미풍을 받으며 항해를 시작함. 자세를 바로잡으려 안간힘을 썻지만 배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고 바닷물이 포문을 통해 밀려들면서 침몰하고 맘. 배에 타고 있던 140여 명의 선원 중 30여 명은 탈출하지 못하고 배와 운명을 같이 함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후 바사호 참사는 거의 잊혀져 감. 그러나 20세기 중반 한 아마추어 해군 역사가가 발트해는 바닷속의 산소농도가 낮고 목재에 유해한 배좀조개가 살지 않는 만큼 300년 전의 침몰선도 거의 원형 상태로 해저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하에 탐색에 나섬
몇년 뒤인 1956년 아마추어 해군역사가는 스톡홀름 서쪽 130킬로미터 지점에서 바사호 선체가 해저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인양 함 \
인양하고 나니 배는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유골과 장신구를 포함 1628년의 시간을 그대로 동결 시킨 것처럼 보존이 잘 되어 있었음
어떠한 기록이나 관련 자료를 거치늘 일 없이 현물 그 자체로 현대인들 앞에 되살안 것임
이만큼 스릴이 있는 일도 드물것임. 스웨덴은 바사호를 복원해서 스톡홀름 시내에 바사호 박물관에 전시함
무엇보다 흥미 깊은 것은 이 박물관이 실패의 박물관이라는 점.
스웨덴에서는 실패에서 배운다는 사고방식이 시민들 사이에 널리 자리잡고 있음. 성숙사회다운 넉넉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