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의 인물은 넷이며 넷 모두 핵심적인 인물이었기에 특정한 주인공은 없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비나를 기준으로 서술하겠다.
사비나는 가벼운 사람이었다. 사랑도 자유도 그 무엇도 그녀에게는 가벼운 가치들일 뿐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모두 그녀와 관련된 서술들이었다.
'배반은 매우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배우지만 배반은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대열을 이탈하여 미지의 것을 향해 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비나는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만큼 좋은 것을 알지 못했다.'
'최초의 배반은 보상될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각 배반은 우리를 원조배반의 시발점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지게 한다.'
'사비나에게 진실에서 산다는 것은 관객 없이 산다는 것을 전제하고서야 가능하다. 어느 누가 우리들의 행위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우리 자신을 맞춘다. 그러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참되지 않게 된다. 관객을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비나는 그녀의 사랑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도 괴롭지 않았으며 반대로 그렇게 함으로써만 '진실에서 살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프란츠는 삶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구분하는 데 모든 거짓은 원천이 놓여있음을 확신한다. 인간은 사적 생활에서는 공적 생활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그에게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간의 담을 허물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마지막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객관적인 시선과 주관적인 자아성찰 간의 괴리를 상반된 두 관점에서 잘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진실된' 것에 대해 꽤 오래 생각해오던 내게 있어서는 아주 인상적인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가벼운 사비나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닌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고 언급된 바 있다.
후술하겠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의 가벼움이 가치판단의 무의미를 의미한다고 본다. 사비나는 말하자면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며 이는 동시에 '가벼움'이라는 가치 자체가 그녀에게는 무거운 것이었음을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구절이다.
나는 밀란 쿤데라가 모든 모순 가운데 가장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언급한 무거움과 가벼움 간의 모순은 가치의 무게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가치 판단에 의해 스스로의 인생을 자아내며 살아간다. 인간의 개별성과 독립성은 모두 개개인의 무수한 가치마다 부여된 가중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가치에 대한 무거움과 가벼움에 따라 인간의 인생이 좌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목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중인물들이 모두 허무한 죽음을 맞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쿤데라가 이러한 수많은 가치들이, 더 나아가 존재조차도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님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본다. 그는 한때 공산주의의 이념을 지지하다가 체제의 부조리를 접한 후 반공산주의자로 전향한 바 있다. 그런 그이기에 더욱 이념과 가치의 무게가 부질없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았을까.
그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그것에 동조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였으나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명령하면 코끼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이념의 대립을 겪는다. 때로는 가치관과 인생이 뒤바뀔 정도의 충격을 받거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가치들은 그저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누군가에게는 가벼울 수 있는 것들일 뿐이다.
[출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독후감|작성자 은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