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뜨거운 태양 아래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 진짜 비가 쏟아지면서 눅눅해지는 책장, 여름과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집의 제목은 '여름'이다.
김연수 작가님이 2021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낭독회에서 얻은 깨달음 이후, 방금 쓰인 따끈한 짧은 분량의 소설을 읽는 낭독회 릴레이를 시작했고 그 소설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5분에서 10분이면 한 편을 낭독할 수 있는 짧은 소설이다.
보통의 단편소설 길이보다 당연히 짧고, 소설의 구성 요소는 충실히 갖춘 소설들. 한 편 읽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편 읽고 수박 좀 먹다 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길이의 소설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그들이 찰나에 깨달은 순간이, 젖은 이마에 문득 스쳐간 한 줄기 바람처럼 우리를 통과하는 소설이라면 여름에도, 아니 여름이야말로 읽기 좋은 이야기들이 아닌가.
한 편 읽고 잠시 수영을 하고 더위를 식하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은 뒤 다음 한 편을 읽다 보면, 우리 안엔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에 대해 고찰하느라 더위를 생각할 틈도 없지 않을까.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수록된 20편의 짧은 소설은 저마다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 좋음에 대해 애써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과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냥하고 친절한 이야기라고만 하겠다.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 결국엔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려는 노력,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에 대해, 타인을 향한 이유 없는 다정함이 우리가 몰랐던 가능성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맞이하게 될 다음에 대한 이야기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코로나 다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김연수 작가가 어머니와 작별하지 않았더라면 딸인 열무와 작별하는 미래는 지금 쓰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뉴욕제과의 막내아들이 기억하는 어머니, 일본어를 쓰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더 나중에 쓰였을지도 모른다.
낭독회를 위해 쓰인 소설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공포로 가득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피신한 가족에게 이미 전쟁을 경험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흔한 지혜로 울림을 전하는 「두 번째 밤」으로 시작해 어머니의 임종과 엄마와의 추억과 일상을 천천히 들려주는 자전적 에세이 같은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마지막으로 배치한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전쟁이 없는 세상을 원하지만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그런 과거가 바랐게 미래가 정녕 이런 모습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김연수의 말대로 우리는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슬픔과 미련에 매달리는 대신 미래의 긍정을 향해서 말이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과 함께.
우리는 저절로 아름답다. 뭔가 쓰려고 펜을 들었다가 그대로 멈추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 채, 다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계를 바라볼 때, 지금 이 순간은 완벽하다. 이게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게 믿어지는가? 이것은 완벽한, 단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우리 역시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생각의 쓸모는 점점 줄어들고, 심장의 박동은 낱낱이 느껴지고, 오직 모를 뿐인데도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