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가 초자연적이고 오킬트한 현장으로 현실에서 형상화와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 대학에 입학하며 사회로 나온 청춘이 겪는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평온한 일상에 기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 역시 작가만의 작동 원리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루키의 페르소나가 그렇듯, 주인공 와타나베 역시 무엇이든 빠르게 터득하고 체화한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우아하여 나같은 둔재는 감탄스럽게 지켜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재능을 타고난 특별한 인간이 두 부류로 나뉜다는데 있다. 하루키적인 특직을 진리 추구에 쓰는 와타나베와는 달리 나가사와는 출세에 사용한다. 본질보다 외관의 자극적인 부분을 치장하며 사람들을 매혹하는 나가사와의 방식은 레이코를 파멸로 이끌었던 여자아이의 묘사에서 자세히 그려진다. 나가사와는 와타나베가 안타까웠을 것이다. 타고난 자질로 세계를 지배해야 할 운운명임에도 와타나베는 그자질을 보이지 않아서 무가치한 것에 쓰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본인의 자질이 특정 분야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해도 전지전능한 능력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능력을 찾아야 하는지도 사실 의문스럽다. 어쩌면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그리고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수도 있고. 그 결과로 능력이 쇠퇴할 수 도 있다. 결국 나 뿐 아니라 주변에서 잘 알아봐주고 양성해주어야 하는 것이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알 속이 편하다고 해서 알을 깨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자아가 생성되는 시기에 익숙해진 세계를 파괴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욱이 하루키는 상징과 은유를 교과서적으로 구사하며 보편적인 주제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나는 10대에 야한 장면이 나온다는 소문에 본 책을 선택적으로 읽으며 책의 의도를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멀리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나온 당시를 비로소 한번에 조망하게 된 나이에 이르게 되니 책의 은유와 기저에 흐르는 정서가 뜻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