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공지사항 FAQ QnA
  • New Arrival
  • BestBooks
  • Category
  • Book Cafe
  • My Books
  • 후기공유
  • 읽고 싶은 책 요청
이중톈 중국사15-무측천의 정치
5.0
  • 조회 395
  • 작성일 2024-05-28
  • 작성자 조성연
0 0
무측천이 자신의 정치적 감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남편 이치에게 있었다. 희대의 명군 당태종은 빛나는 성취를 이뤘고 백성은 풍요로웠고 나라는 강력했다. 고종은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성과를 누리기만 하면 될 것이었으나 잘하면 선제의 덕이고 못하면 자신의 무능이 되는 선제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후궁에서는 저마다의 싸움에 정신이 없었고 권신은 고종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에 불과했다. 심지어 선제 때부터 조정을 드나든 권신은 황제를 어린아이 취급했으며 공공연하게 부패를 저질렀다. 후궁도 권신도 모두 골칫거리인 상황에서 고종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곤궁에서 끄집어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무측천이 바로 이치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무측천의 정치 본능은 이렇게 깨어났다. 완벽한 정치가가 된 무측천은 고종 사후에 완벽하게 정권을 넘겨받게 된다.

무측천의 성공은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감각 덕분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무측천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과소평가 덕에 무측천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고 무측천의 결정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무측천이 문학에 능한 인사들을 소집해 책을 편찬하겠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급기야 황제, 태자, 후비나 되어야 출입이 가능한 북문(현무문)으로 그 편찬자들을 들여왔고 북문의 학자들은 재상이 되어 당당하게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무황후는 단지 역사를 연구해 책을 편찬하려던 것이 아니라 역사를 새로 고쳐 쓰려했던 것이고, 집필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문팀까지 조직하려 했다는 것을. 한 여자가 그토록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을 줄은 누구도 몰랐다.

무측천은 밀고를 장려했다. 내용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제보를 받았으며 모든 밀고자는 관리가 되었고 무측천에게서 직접 상을 받았다. 밀고가 거짓이어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무측천의 구미에만 맞으면 승진하고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처럼 보상이 후했으니 밀고는 끊임없이 밀려들어왔고 그래서 혹리가 생겨났다. 밀고를 위해 사건을 꾸며내면 만들 수 없는 사건이 없었고 그래서 무측천의 정적을 없애는 효과가 있었다. 동네 사람을 모반죄로 날조해서 밀고하는 바람에 200명의 애먼 사람들이 살해당해도 밀고한 자는 공을 인정받았다.

혹리의 출신과 교양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측천의 안색을 잘 살피고 비위를 잘 맞춰주는 것이 중요했다. 무측천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만약 혹리가 사건을 날조해서 피고가 불복한다고 해도 다짜고짜 그의 목을 베고 그를 대신해 자백서를 쓰면 그만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위협과 유혹을 병행했다. 그러니 처리하지 못할 사건이 없었고 무측천의 사람들은 급속도로 증가했고 모두 하나같이 혹리가 되었다. 무측천은 당태종처럼 황위를 얻기 위해 칼을 들고 전쟁을 할 일은 없었으므로 끄나풀에 지나지 않는 혹리 집단을 꾸려 그들을 조종하는 공포정치를 11년이나 실시했다. 무측천은 이런 혹리들을 사냥개로 삼아 황위를 향해 달려가는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무측천이 황제가 되려 했을 때 혹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 무측천은 이제 당나라는 어둡고 무서운 시대였고 새 왕조에는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일러줘야 했다. 무측천이 황위에 오른 이상 무조는 밝은 하늘 아래에 있는 평화로운 시대여야 했다. 이때 혹리들을 이용해야 했다. 이제 혹리의 머리를 잘라 사람들의 상처를 달래고 위로하고 민심을 안정시켜야 했다.

무측천은 14년 4개월간 황제를 지낸 뒤 태자 이현에게 황위를 넘긴다는 조서를 내린다. 이현은 주나라의 황제가 되었고 어머니를 ‘측천대성황제’라고 칭했다. 이어 당나라 국호 회복을 선포하면서 무측천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무측천은 황위를 내려놓을 때조차도 주도면밀했다. 조카 무삼사에게 주나라의 명맥을 이어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무삼사는 당연히 주 왕조를 비방할 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측천은 그의 정치적 감각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무삼사가 실수하는 순간 주나라는 가짜 정권이 되었을 테니 그에게 황위를 줄 수 없었다. 황제가 된 이현은 과연 무측천을 실망시키지 않고 주나라와 당나라를 모두 일으키는 쪽을 선택했다.

무측천은 세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후궁과의 전쟁, 신하와의 전쟁, 인륜과의 전쟁이다. 비구니 무미낭이 모든 역경을 넘고 측천대성황제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의 대원칙 ‘정치’에 있었다. 무측천의 능묘에는 글자 없는 비석, 무자비無字碑가 세워져 있다. 누구도 무측천의 일생을 제대로 요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등록
도서 대출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취소 확인
알림
내용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