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 광인의 수기'를 읽고]
※ 이반일리치의 죽음
'운명이여, 안녕'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시선으로 삶의 진실을 말한다.
끝 모르고 달려온 '내 인생이 엉터리라는 것'
그간의 성공과 기쁨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엄청난 기만이었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죽음으로 다음을 잃어버린 성공은 퇴색하고 그 자체로 기쁨을 주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만 위안이 된다.
한 계단 씩 올라서던 삶이 죽음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었다.
죽음은 별안간 나타나 이반 일리치의 삶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것과 조우한 이반 일리치는 저항했다.
고통이 더해지며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에서 멀어지고 결국 죽음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이반 일리치는 너무 늦게 죽음과 조우했다. 죽음이 닥치고서 별안간 죽음을 만났다.
그래서 항의하고 무시하고 거부했지만 죽음의 마지막 순간 결국 받아들였다.
죽음은 언제나 삶과 함께한다. 당장은 삶이지만 마지막은 죽음이 지배한다.
※ 광인의 수기
'광인의 수기'에서 나는 죽기 전 <진실>을 본다.
그리고 광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현재 살아 있고, 과거에도 살았으며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서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죽기 위해서?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죽어야 하나? 두렵다. 죽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건 더 두려운 일이다. 그럼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가? 어째서지? 죽기 위해서?
나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어느 날 나를 엄습한 죽음의 공포는 삶을 마비시킨다.
나는 온통 죽음 생각뿐이다. 죽음의 문제 앞에 그동안의 삶은 의미를 잃었다.
나는 이제 홀로 있을 때도 분별할 수 있는 어떤 기쁨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헤매며 그간의 것들이 의미를 잃는 동안 나는 내 안에 있는 순수한 기쁨도 발견한다.
무엇이 <그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의 삶이었던 것들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었다.
나는 죽음 이전의 삶을 버리고 내 안의 기쁨을 깨우고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할 삶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