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에는 그 날의 기상 변화, 군무 내용, 진중의 군정 등이 기재되어 있으며, 본가에 대한 걱정, 자식과 아내, 모친에 대한 그리움, 평생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류성룡에 대한 걱정, 원균에 대한 비판 등 이순신 본인의 개인적인 정서도 기록되어 있다. 각각의 일지는 일기답게 대체로 요점만 간략하게 적혀 있으며, 별 일 없었던 날에는 그냥 날씨만 기재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번역본을 읽다 보면 한두 문장으로 끝나는 날도 있고 정유년(1597) 일기처럼 이순신의 절절하고 애틋한 감정을 숨김없이 적어놓은 부분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4]. 가장 반복적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은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는 것, 활 몇 순(1순은 5발)을 쏘았다는 것, 어머니의 안부,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는 것 등이다.
이순신이 체력이 약하다는 설은 이우혁의 왜란종결자에서 기인하였다. 작가가 허구로 지어낸 것은 아니라 난중일기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 매우 많은데 설사병이 심해서 하루종일 뒷간을 다녀오느라 일을 못한 사례도 있고 배탈이 나거나 감기를 앓은 내용도 많다. 그래서 이순신을 허약한 체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러한 사실들이 정확하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의 명장으로서의 재능과 공적들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노환과 정치권의 박대와 신체로 체감하는 물리적인 전쟁을 비롯한 극단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체력 관리 부족이라는 설은 지나친 격하로 곡해될 '수도' 있다. 왜냐면 군인에게 체력은 곧 본질적인 군인의 능력이자 당연한 능력 관리인 것이 사실이기에 만약 체력 관리 부족이라면 군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초인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며, 만일 정말로 허약했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렇기에 지휘관으로서 거둔 성과를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에 48세로 당시에는 노령기에 진입한 셈이다. 선조에 의하여 국문과 백의종군을 당하고 받은 정신적인 충격과 병이 전쟁으로 얻은 피로와 노환을 더욱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풍파를 겪으며 신체가 약화되는데도 수군 통제사로서의 격무가 눈 앞에 가득하니 몸이 망가지는 건 당연하다. 사천 해전 중에 어깨에 총상을 입었는데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치료가 완벽하지 못해서 후유증도 달고 살았다. 사천 해전이 끝나고 1년이 지나 류성룡에게 보낸 서신에 "어깨 뼈가 많이 상했고 상처에서 항상 진물이 흘러 하루종일 뽕나무 잿물과 바닷물로 소독한다."라고 서술한다. 사천 해전에서 입은 총상도 이순신의 건강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백의종군을 하기 전에도 며칠에 걸쳐 병을 앓은 기록이 흔하니 청년기에는 강건했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종합하면 이순신의 평상시 건강이 어떤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은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노장인데 총상과 국문의 후유증과 산적한 격무에 시달리면서 더욱 건강이 악화된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왜란 당시의 이순신은 하급 군인이 아니라 전장을 지켜보며 책략을 펼치는 지휘관이어서 칼을 들고 다니며 적을 무찌를 정도로 강건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순신의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시라는 상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망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장성급 장교들도 전쟁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전쟁이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악화된 건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례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