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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한국사:인물편-본격우리역사스토리텔링쇼
5.0
  • 조회 397
  • 작성일 2024-06-17
  • 작성자 고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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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성은 1부 나라의 운명을 뒤흔든 사람들과 2부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들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으며 1부에는 이성계, 궁예, 의자왕, 이방원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2부에는 연산군, 사도세자, 세종대왕, 어우동 이야기가 소개된다. 먼저 제1장 이성계의 이야기는 무장 집안에서 자라난 이성계는 활과 기무술에 뛰어나고 힘도 장사였다. 동북면을 원에 빼앗겼을때 원에 귀화했던 이성계 집안은 공민왕이 동북면을 약 100년만에 되찾을 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힘을 보태어 고려에 복귀한다. 이성계는 홍건족에게 함락당한 개경을 3개월만에 수복하는데 큰 공을 세워 경성수복 1등 공신이 되고 고려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왜구도 토벌하고 공을 세우지만 권문세족의 방해로 중앙 정계진출은 하지 못한다. 원명 교체기에 요동을 차지한 명은 고려에 원의 땅이었던 철령 이북 지역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주장한다. 친명파 정몽주는 명과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내세워 정벌을 반대하다가 우왕의 협박으로 위화도에 갔다가 회군해 실권을 가지고 조선을 건국한다.
제2장 궁예 편에서는 궁예는 후궁이 낳은 신라왕의 아들인데 왕이 불길한 날 태어났다고 죽이라고 해서 유모가 데리고 도망가서 키운다. 신라말 귀족들의 부패와 향락으로 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의 봉기를 일으키자 궁예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호족 양길 밑에 들어가 힘을 키워 고구려를 계승해 고려를 세우고 송악의 호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철원으로 수도를 옮긴다. 궁예는 자신을 신격화하며 관심법을 내세워 무죄한 사람들을 죽이며 공포정치를 한다. 부인과 자식들까지 잔인하게 죽이며 폭정이 계속되자 태봉의 장수들과 부인 유씨가 왕건을 설득해 왕건은 피흘리지 않고 혁명에 성공하여 왕건의 고려를 세운다.
제3장 의자왕 편에서는 의자왕은 삼국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전쟁마다 승승장구했고 백제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었다. 그는 사치와 향락만 일삼은 무능한 왕이 아니라 백성을 잘 먹이고 영토를 넓히고 성왕의 원수도 갚고 왕이 할일을 잘 수행한 유능한 왕이었으나 어느순간 초심을 잃고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왕이었다.
제4장 이방원 편에서는 이방원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때 친모와 아버지의 경처와 형제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나 가족이 인질이 되지 않게 지켰다. 아버지의 정적인 정몽주를 제거하였으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져 세자의 자리에서 소외되고 공신록에서 배제되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강씨의 두 아들을 죽이고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넷째 방간을 제압하고 정종의 양자가 된 후 왕으로 등극한다.
제5장 연산군편에서는 8살때 세자로 책봉된 연산은 잔인한 성격과 공부를 게을리하여 성종의 근심거리였다. 19세에 왕위에 오른후 삼사와 갈등이 있자 무오사화를 일으켜 삼사의 관리 50여명을 사형, 유배, 파직시킨다. 이후 연회와 여색에 몰두한 연산군은 백성들이 자신이 노는 것을 볼 수 없게 궁궐에 높은 담을 쌓고 금표를 설치해 고지대의 집들을 없애고 주민들을 몰아낸후 흥청망청 지내다 즉위 12년만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도어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2개월만에 전염병으로 죽는다.
제6장 사도세자편에서는 15개월만에 세자로 책봉을 해 역대 최연소 세자가 되며 3세부터 조기교육시켜 흠없는 왕으로 키우고자 했던 영조의 노력에 반하여 무예와, 그림, 불교 등 공부외에 것들에 몰두하는 세자로 인하여 아들이 못마땅한 영조가 자꾸 질책함으로써 세자는 아버지 앞에서 자꾸 위축되어 간다. 15살 대리청정을 시작으로 세자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자살소동을 일으키거나 내시를 죽이는 등 1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벌이고 여승과 기생을 데려와 밤새도록 잔치를 벌인다. 결국 밤늦게 아버지 영조의 거처로 무단으로 난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됨으로써 생모가 영조에게 아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영조는 손자인 정조를 다음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하고 세자를 뒤주에서 죽게한다.
제7장 세종대왕 편에서는 아들 문종의 며느리를 두번이나 이혼시키고 다른 두아들도 며느리가 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시킨다. 하지만 그 중 한사람인 영응대군은 세종이 죽자 아내와 재결합하고 부인 남씨는 70대까지 장수하였다. 세종은 문종의 첫번째 며느리를 이혼시킨 것에 대하여 두고두고 후회하였다고 한다.
제8장 어우동 편에서는 공신집안 딸로 태어나 왕손과 결혼하였으나 누명을써 이혼아닌 이혼을 하게 되었으며 친정부모에게도 냉대를 받은 박고비, 즉 어우동은 하녀의 조언으로 사헌부 오종년을 시작으로 자유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자유연애가 소문이 나 의금부에 끌려갔으며 성종은 없던 법까지 끌어들여 그녀를 사형시켜 반면교사로 삼는다. 여자를 억압하던 시기에 희생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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