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서는 단순하게 요약되기 쉬운 실존 인물의 삶을 역사적 기록보다도 철저한 상상으로 탄탄하게 재구성하는 김훈의 글쓰기 방식이 빛을 발한다. 이러한 서사는 자연스럽게 김훈의 대표작 『칼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데, 『칼의 노래』가 명장으로서 이룩한 업적에 가려졌던 이순신의 요동하는 내면을 묘사했다면 『하얼빈』은 안중근에게 드리워져 있던 영웅의 그늘을 걷어내고 그의 가장 뜨겁고 혼란스러웠을 시간을 현재에 되살려놓는다.
우리가 안중근을 생각할 때 독립운동가, 영웅적인 모습만을 떠올리지만 이 책 속에 존재하는 안중근은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 천주교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처참했던 실상을 묘사하지 않았고, 일본군의 만행과 악탈, 억압을 그려내지 않았고, 그에 대조해 우리 민족의 저항을 정당화하지도 않았고, 오직 안중근의 생각과 여정 그 자체만을 생각하고 쓴 글이다. 이러한 안중근의 뒤에서 조용히 같은 짐을 지어야 하고 희생을 해야만 했던 가족들의 모습 또한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책임감 없이 처자식을 버린 가장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자신의 조국을 위해 처자식만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버린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인상 깊은 구절>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힌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 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이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저는 10월 26일에 이토를 쏘았는데, 저의 처자식이 27일에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처자식이 미리 도착해서 저를 만났다면 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저는 이 하루 차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 이제부터 그 사유를 말하고자 한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 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