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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사
5.0
  • 조회 403
  • 작성일 2024-05-29
  • 작성자 조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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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0일~15일, 총독부와 여운형의 협상으로 일본은 치안 유지 협력을 약속받았고, 여운형은 총독부에 협조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정치범 석방, 식량 확보, 치안 활동의 자율성, 집회·결사의 자유 등 ‘5개 조’의 승인을 얻어내 사실상 어느 정도의 행정권을 이양받는다. 한민당 계열이 나중에 여운형을 ‘친일파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한 것은 총독부와의 협상을 두고 중상모략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 건준의 발빠른 대응과 위세에 밀려 초기의 헤게모니를 빼앗긴 뒤 사후적 흠집 내기에 불과했다. 총독부는 한민당 송진우 측에도 협상을 제의했으나 송진우는 여운형과 총독부 합작의 종전 대책이 구체화되는 데 반발하며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운형 측이 총독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송진우 측에 연합을 제안했지만 송진우 측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자는 총독부가 애초 여운형과의 협상을 통해 ‘치안유지회’를 의도했지만, 여운형이 대담하고 노련하게 ‘건국준비위원회’(건준)라는 국가 건설 기구 형태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한다. 한민당 측은 국가 건설을 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의지도 없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들이 건준과 이후 인공(조선인민공화국)을 비판하고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학계에서는 건준이 민족통일전선, 좌우합작기구로 출발했으나 좌익의 우세와 우익의 탈퇴로 인해 위상을 잃었다는 설명이 지배적이었으나, 저자는 한민당 계열이 사실상 건준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1945년 해방 직후사』는 총독부와 여운형 협상의 실제, 건준 탄생과 성립 과정에 대한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설명”을 내놓을 뿐 아니라, 건준과 한민당의 관계, 건준에 대한 한민당의 대응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군정은 1945년 12월에 신탁통치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독촉중협(독립촉성중앙협의회)을 현실화하고자 이승만과 한민당 수뇌부에 모스크바에서 신탁통치안이 논의될 것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알렸다. 이승만을 위시하여 한민당 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독촉중협에 좌파는 물론이거니와 임시정부 계열조차도 참여를 거부한다. 이승만과 한민당이 임정 봉대(奉戴)를 내세웠지만 사실 그들은 임정의 후광을 이용하고자 했을 뿐, 임시정부에 권력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저자는 본다. 미군정·이승만·한민당의 3중주였던 독촉중협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공학이었다.

우리는 임시정부 계열이 1945년 말 모스크바3상회의 이후 반탁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진정한 반탁운동’은 미군정과 이승만 그리고 한민당이 비밀리에 추진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의 반탁은 민족주의적 명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욕망과 책략일 따름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좌우한 실질적인 동력과 모멘텀은 1945년 말 반탁운동이 아니라 미군정 초기 미군정 주도의 반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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