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제노사이드는 간단히 말하면 목적을 가진 대량학살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간토지방 지진으로 무너진 민심과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등이다. 두꺼운 책에 비해 목차는 간편한데 첫 조입부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콩고 열대우림에 신종 생물이 출현했다는 보고서가 올라오고 치사율 100%의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학자와 아프리카 피그미족 한 집단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이 명령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작전 수행 중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생물과 마주한다면 무조건 사살할 것 이라는 조건이었다. 여기에 사족으로 딱 한번만 봐도 미지의 생물이라고 바로 알 수 있다는 정보만 주어진 상태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같은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소설은 여기에서 질문 하나를 던진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끝이 아니라면? 만약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진화해서 호모사피엔스가 된 것 처럼, 현생 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인류가 출연한다면 우리는 도태될 것인가? 그렇다면 도태될 운명에 놓인 현생인류는 다음 인류에 대하여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인가?
소설에서는 다음 인류를 말살 시키기로 결정하고 자연의 이치를 뛰어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소설에서는 앞서 말한 제노사이드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인간이 인간을 대량학살함에도 불구하고 현생인류가 살아남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소설에서 하이즈먼 박사는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기에 개인의 이익을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일부는 수긍하면서도 개인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켜주는 사람들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소설에서 자기와 무관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신인류를 지켜내는 예거일행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타적인 사람들이 호모사피엔스에서 진화한 종류의 인간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로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