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이라고 하면 이과적 학문으로 일단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다.
책 제목처럼 내가 보는 지금의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면 '나'라는 존재의 출발과 끝 그리고 우주는 과연 무한한지?
이런 저런 얇은 지식을 가진 나로서는 카를로 로벨리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루프양자중력의 이해도를 떠나 물리학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저자가 말하는 주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양자역학은 세계를 이런저런 상태를 가지는 '사물'로 생각하지 말고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과정은 하나의 상호작용에서 또 다른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경과이다. 사물의 속성은 오직 상호작용의 순간에만, 즉 과정의 가장자리에서만 입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오직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러하다고, 그리고 그 속성들은 단 하나로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에측할 수 있다.
과학의 답은 확정적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답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답인 까닭은, 우리가 그 답을 확정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언제나 개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무지에 대한 의식이 특별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신뢰성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진정한 확설성은 없고, 우리가 어떤 것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확실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답은 과학적인 답이며 과학은 확실한 해답이 아니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답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멀리 보려고 더 멀리 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놀라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는 조상들이 우리에게 해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더 특별하고 심오하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비감을 없애지 않는다.
양자중력이 드러내 보여주는 세계는 새롭게 기묘하고 신비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단순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합적인 세계이다.
그것은 공간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 속에서 펼쳐지지 않는 세계이다. 상호작용하는 양자장들로만 이루어진 세계, 그 장들이 무리를 지어 상호작용하는 조밀한 연결망을 통해 공간, 시간, 입자, 파동, 빛을 만들어내는 그런 세계이다.
물리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인문학적인 접근과 철학적인 부분까지 불교에서 말하는 아즉 우주, 우주즉 아의 의미와 색즉시공, 공즉시생이라는 의미를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더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한이 아닌 시공을 초월한 과정으로서의 존재, 그러한 상호적인 정보에서 사물의 구조를 알아내듯 인간의 삶 또한 나 홀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상호 관계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